경계를 넘어온 당신의 기억을 듣고 싶습니다
2019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진유라 『무해의 방』
“이 소설은 우리에게 도래할 가까운 미래의 꿈을
미리 연습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심사위원 윤대녕·윤성희·구병모·송종원
2019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진유라의 『무해의 방』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무해의 방』은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탈북한 한 여성, 무해에 관한 이야기이다. 탈북 사실을 숨긴 채 가정을 꾸리고 생활하던 중 초로기 치매를 진단 받은 그녀는 홀로 남게 될 딸에게 남겨줄 기록을 시작하고, 자신 안에 기록이 되지 못한 기억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경유하는 그 험난한 고난 속에서 기록되지 못했던 무해의 고백이 치매의 몸을 입고 소설로 재현되기 시작한다.
변화하는 남북한 관계를 예민하게 감각하여 축조해낸 이 소설은 전혀 다른 역사와 맥락을 가진 타인과의 관계 맺음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질문한다. 같은 맥락에서 『무해의 방』이 가장 치열하게 파고드는 탈북자 문제는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도래할 가까운 미래의 꿈을 미리 연습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심사평에서처럼, 『무해의 방』을 읽는다는 것은 문학의 상상력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미리 추체험해보는 것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탈북이라는 생존의 위협을 견뎌온 무해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다시 한번 인간 존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편 『무해의 방』은 치매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통스러운 기억마저 소중해지는 망각의 순간을 통해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면서, 소설은 치매가 만들어내는 비일상의 공간을 재현과 고백의 공간으로 바꾸어낸다. 무해의 기억을 통해 우리는 그녀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데, 특히 기억의 폭풍 속에 주저앉은 무해를 붙드는 작은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무해의 고백기도는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광범위한 취재를 바탕으로 구성된 생생한 소설적 상황은 무해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게 하는 한편 고통을 넘어서려는 문학적 시도를 구성한다. 이 시도를 통해 『무해의 방』은 미래에서부터 이쪽의 현재를 바라보게 하는 방식으로, ‘너머’의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