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물건 제작’의 특징이 없었다면
지금의 역사는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돌조각 두 개를 맞부딪쳐 불꽃을 일으키는 법을 알아낸 초기 인류와, 훨씬 뒤에 자동차와 고속도로를 만들어낸 현대인의 공통점은? 바로 이들이 손으로 물건을 제작하는 영장류,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는 점이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인류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도구를 사용하여 자연환경을 통제하고, 활용하고, 때로는 정복하려 애써왔다. 이 책은 손으로 만들고 조작하는 물건들, 즉 기술과 기술시스템에 맞춰 인간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간다.
많은 사람들은 ‘기술사’라는 단어를 접하면 일종의 자격증 같은 것을 떠올릴 테지만, 이 책의 저자이자 미국의 기술사학자 루스 슈워츠 코완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복잡한 삶과 역사 그 자체를 ‘기술사’로 읽을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이 가진 미덕은 기술사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을 깨고, 기술사를 지성사, 기업사, 경제사, 노동사, 사회사, 문화사, 농업사, 환경사 등의 다른 역사 분과들과 끊임없이 뒤얽히며 서술한다는 데 있다. 더욱이 방대한 자료조사와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저자 특유의 글쓰기는 걸출한 역사서를 읽는 듯, 흥미로운 소설책을 읽는 듯한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 책은 기술사 개론서이자, 미국의 사회사와 경제사를 조망할 수 있는 텍스트이다. 물론 미국사 연구서이기도 하다. 미국의 역사는 오랫동안 경제사적 시각, 지성사적 시각, 전기(傳記)적 시각 등, 수많은 시선에서 서술되어왔으나, 기술의 시선에서 서술된 적은 거의 없었다. 이는 미국의 기술이 미국 번영에 기여한 중요한 요인이자 미국 문화의 정수로 간주되어왔음을 감안하면 이상한 일이다. 이러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 이 책은 일찍이 아메리카 원주민이 사용한 도구에서, 자동차, 컴퓨터, 항공기, 항생제, 피임약 등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기술시스템까지를 아우르며 미국 기술의 역사를 충실하게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