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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대승기신론소
글쓴이
서기남 글 /박수로 그림/손영운 기획
출판사
주니어김영사
출판일
2019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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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분야어린이
원효, 우리나라 불교의 첫 새벽을 열다

원효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인물이다. 원효의 불교 철학이나 사상은 잘 모르더라도, 동굴에서 자다가 해골 물을 마신 일화나 승려의 몸으로 요석 공주와 인연을 맺은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원효는 한국 불교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업적을 쌓은 인물이다. 그럼에도 원효가 이처럼 대중에게 친근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원효가 추구했던 대승 불교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

원효는 신라의 6두품 귀족 출신으로 출가 전에는 화랑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무수한 전투와 살생을 경험하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한다. 이때 얻은 법명인 원효는 ‘첫 새벽’이라는 뜻으로, 원효는 자신의 이름처럼 우리나라 대승 불교의 시작을 여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효는 평생 동안 불교를 널리 보급하는 데 힘썼다. 이는 대승 불교가 개인적인 깨달음에 도달해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탈’뿐 아니라, 여러 중생들을 구제하는 일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즉, 대승 불교는 불교의 대중화에 힘쓰는 불교라 할 수 있다.

원효는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 해골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를 깨달았다. 이후 ‘옳음과 그름’, ‘깨끗함과 더러움’처럼 분별하는 마음을 없애기로 결심하고 천민들과 어울려 살며 스스로를 소성거사(그릇이 작은 사내)라 일컬었다. 원효는 천민들을 불쌍히 여기고 동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스승처럼 받들고 친구처럼 더불어 살고자 함께 지냈다. 또한 요석 공주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고는 파계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처럼 자신을 낮춘 원효는 일반 백성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불교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었다. 조금은 엉뚱하고 자유분방했던 행동에는 불교의 대중화를 이루고자 했던 원효의 깊은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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