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빛낸 집합주택 30
이 책은 20세기의 주거문화를 특별한 방법으로 이야기한다. 집합주택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 ‘미시를 통한 거시’의 방법을 취한다. 중요한 사건이나 사례를 조목조목 살펴봄으로써 그 시대를 세세하게 읽고, 그 시대의 문화를 깊고 넓게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런 목적에서 저자는 20세기에 지어진 ‘두드러진’ 집합주택 30 사례를 선정하고 그것을 ‘시대를 빛낸 집합주택’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그 각각을 조명한다. 평면, 입면, 공간 같은 건축적 내용은 그리 세세히 살피지 않는다. 분명 ‘건축 분야의 책’이지만 딱히 건축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건축물 자체보다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이런저런 이슈를 더욱 중요하게 다룬다. 건물이 들어선 시기의 사회적·문화적·도시적 상황, 건물이 들어서기까지의 과정과 난관, 건축가의 의도와 계획개념, 그것이 담고 있는 이념과 역사적 가치, 건물에 대한 비평가 및 주민의 평가, 다른 건물에의 파급효과, 인류 주거문화에 끼친 영향 등에 더욱 무게를 둔다. 더불어 건축가들과 함께한 정치가, 개혁가, 또는 일을 맡긴 자본가들에 관한 이야기도 빼지 않는다. 결국은 시대가 주거라는 화두를 놓고 했던 모색과 고뇌, 그리고 그 성취와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에 소개된 30 사례의 지역적 분포를 살펴보면, 유럽 21, 미국·캐나다 4, 일본 3, 한국 1, 아프리카 1, 그렇다. 우리나라와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각각 하나씩 선정된 것이 흥미롭다. 저자는 책에 소개된 집합주택에 대해 “집합주택을 단지 ‘건물’이 아닌 ‘건축’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업”이라고 규정한다. 그 모두가 20세기 인간 삶의 인문학적 증언이면서, 시대의 유산이자 인간을 향한 애정과 존경이 담겨있는 인류의 역사적 성취라고 말한다. 한때의 유행어를 잠시 빌려, ‘죽기 전에 꼭 성찰해야 할 집합주택’인 것이다.
유일하게 선정된 우리나라의 집합주택은 1988년 서울 방이동에 들어선 올림픽 선수촌·기자촌 아파트이다. 저자는 이 아파트단지에 대해 “우리가 어렵사리 만들어낸 문화재”라고 규정한다. 그런 사실을 주민들은 물론 서울시도 모르는 것 같다고 걱정한다. 문화재를 뭉개버리고 40~50층 초고층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올림픽 선수촌·기자촌 아파트만은 제발 보호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만약 이 단지의 재건축에 사인하는 시장이 있다면, 그는 문화시장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시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