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여 년 동안 종이와 연필로 주변의 평범한 대상을 담아 ‘연필화’를 하나의 독립된 회화 표현 방식으로 정립한 원석연(元錫淵, 1922-2003). 그는 이중섭, 김훈, 백영수, 이응노 등 그가 교유한 동시대 작가들에 비해 유난히 알려져 있지 않다. 동료화가들 사이에서도 ‘괴벽이’ ‘대꽂이’로 불릴 만큼 독특한 성격이었던 데다가, 연필화가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점차 단절과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원석연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새 16년이 되는 2019년, 그의 그 림이 ‘섬 시인’ 이생진(李生珍)의 시를 만나 한 권의 아담한 책으 로 세상에 나왔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1978)로 널리 알려진 시인은, 인물, 풍경, 사물, 동물, 곤충 등을 세밀하게 포착한 원석 연의 연필화를 보고 마음을 빼앗겨 순식간에 시를 써 내려 갔다. 1954년작 [자화상]부터 세상을 떠나던 해인 2003년작 [도마 위 정물]까지 원석연의 연필화 38점, 그리고 그에 영감을 받아 새로 태어난 이생진의 시 51편이 서로 마주하며 대화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