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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 그르니에 서한집
글쓴이
알베르 까뮈 외 1명
출판사
책세상
출판일
2012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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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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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까뮈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했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책 소개

분야에세이
‘반항하는 인간’ 알베르 카뮈와 ‘따뜻한 회의주의자’ 장 그르니에
두 빛나는 지성이 평생 동안 주고받은 우정과 사색의 편지 235통


프랑스 문학, 철학사와 더불어 세계적인 지성으로 이름을 남긴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 두 작가가 각각 열아홉 살과 서른네 살이었을 때부터 카뮈가 마흔일곱 살에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주고받은 235통의 서신들을 모아 묶은 책이다. 카뮈가 112통, 그르니에가 123통이다. 어떠한 이유로 카뮈가 그간 모아온 서신들을 모두 불태워버려 그르니에가 보낸 편지는 스물일곱 번째에야 이르러 등장하지만, 어쨌거나 이 책은 두 사람이 평생에 걸쳐 나눈 내밀한 대화의 총체와도 같다.

이 책에서 카뮈와 그르니에의 애독자들이 제일 기쁘게 발견하는 것은 이 상이한 두 작가의 지적 운명이 맞물리면서 발전하는 모습이다. 서한집의 편지 글 속에는 이제 막 문학에 눈을 떠 글을 써보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한 청년이 큰 작가가 되기까지의 내적 성찰과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늘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감내했어야 할 외부의 비판과 저 유명한 사르트르와의 논쟁에 대한 카뮈의 속내, 그리고 무엇보다《이방인》,《페스트》,《시지프 신화》등의 역작들이 씨앗의 모습에서 열매로 영글기까지의 과정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의 세계에 대한 카뮈와 그르니에의 입장이 늘상 일치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근본적 세계관이 달랐던 만큼 둘의 대화에는 차이에서 기인한 대립이 존재했다. 그러나 카뮈와 그르니에는 이와 같은 차이에 대해 내어놓고 토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 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들은 그 솔직함과 인간적인 면들로 인해 더욱 감동적이다. 그리하여 그렇게 쌓인 사랑과 신의로 둘은 사제 관계를 뛰어넘어 마침내 영혼의 교감을 나누는, 세상에 둘도 없을 지적/문학적 동반자가 되었다. 문학사상 가장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이들 사제의 관계를 카뮈는 “예속도 복종도 아닌 대화요 교환이요 상호대조였으며, 영적인 의미에서의 ‘모방’ "이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조화로운 공감과 차이를 소통하며 주고받은 메아리들이기에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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