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귀양터 남해 유배지를 찾아서
유배는 죄인을 먼 곳으로 귀양 보내는 것을 말하며, 대체로 정치범들이 이 형벌을 받았다. 교통과 통신이 수월찮았던 시절, 주류에서 밀려나 언제 다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귀양 가는 것은 권력을 탐하던 벼슬아치들에게는 무서운 형벌이었을 것이다. 귀양 가는 이들은 대개 당쟁에서 밀린, 다시 말해 중상과 모략에 놀아난 이들이었다. 당파싸움은 선조 때 동인과 서인으로 파가 나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었는데, 이러한 갈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심해졌을 뿐만 아니라 고착화되었다. 이처럼 당파싸움이 치열해질수록 유배객들의 수도 덩달아 늘어났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남해로 귀양 간 류의양 역시 그중 한 명이다. 류의양은 여느 유배객들처럼 유배지 남해에서 보고 겪은 일을 남해문견록에 남겼다. 이 책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우연히 남해문견록을 손에 쥔 지은이 박진욱은 이 책에 기록된 유배의 흔적을 찾아 13일 동안 남해를 답사했다. 남해는 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예부터 유배지로 ‘각광’ 받았다. 남해로 귀양 온 수많은 유배객들 중 누군가는 임금의 부름을 받아 주류 사회로 복귀했고, 누군가는 서포 김만중처럼 유배지 남해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이 유배객들은 남해 곳곳에 그들의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