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씨앗 한 톨에 담긴 농부의 땀과 삶
예로부터 잡곡농사는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농사였다. 잡곡은 쌀이 아니라는 이유로 ‘잡스러운’ 취급을 당했지만, 쌀의 빈자리를 채워준 고마운 존재였다. 예부터 벼농사가 잘 안되면 대신 짓기도 하고, 귀한 쌀을 대신해 가난한 농민들의 끼니로 부족한 영양까지 메워주었다. 밀, 참깨, 조, 팥, 율무, 콩, 보리, 기장 등을 계절, 땅을 나누어 기르고 때가 되면 거두어 먹었다. 잡곡의 ‘힘’을 사람들이 알게 된 건 참살이(웰빙) 바람이 불면서였다. 옛날에는 천대받았지만 오늘날은 건강식으로 아주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토종’ 곡식은 별로 없다. 농촌에서 사람이 사라진 탓이다. 아직 농촌에 남은 나이 든 농부들은 팔기보다는 집에서 먹으려고 토종 곡식을 기른다.
같은 곡식이라도 농부마다 농사짓는 방법이 다 다르다. 경험을 통해 얻은 자기만의 비법이 존재한다. 더구나 오랜 시간 우리 땅의 특성에 적응한 토종 곡식에는 그것에 맞는 특별한 재배방법이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농촌에 사람이 없고, 곡식을 기르지 않아 긴 세월 쌓인 농부들의 지식은 사라지고 있다. 또한, 곡식을 기르고 거두고 탈곡해서 먹는 과정에서 썼던 농기구 등도 찾아보기 어렵다. 앞으로는 각 지역에서 그 곡식으로 해 먹었던 음식조차 맛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농경문화의 소멸이다. 농촌에 사람과 문화가 없어진다는 것은 씨앗도 남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이 책은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사라질지도 모르는, 현역 농부들의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역시 농부인 저자들이 이 땅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토종 곡식을 기르고 먹는 농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 농사꾼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도시에 좋은 먹을거리를 공급한다는 마음으로 토종 곡식을 기르는, 아직 젊은 농부들도 있다. 착하고 끈기 있는 농부들은 토종 곡식을 어떻게 잘 기르고, 잘 먹는지 등 긴 세월 쌓은 지식을 아무 아낌없이 퍼준다. 실용적인 지식을 담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토종 곡식과 어우러진 농부의 삶 이야기가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