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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정사 삼국지 촉서
글쓴이
진수 저
출판사
휴머니스트
출판일
2019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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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진수

자가 승조이며 파서군 안한현을 본적으로 하여, 위·촉·오 삼국이 팽팽히 대치하던 시기인 233년, 촉나라에서 태어나 진나라에서 벼슬하다가 원강 7년에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진수 부친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진수는 촉나라에서 관각령사를 지냈는데, 환관들이 전횡하고 조정의 신하들이 아부하는 것을 보면서도 뜻을 굽히지않아 결국 벼슬에서 쫓겨났다. 촉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여러 해 동안 배척을 받아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그 후 진나라(서진)에서 진남대장군 두예가 진수의 지식이 깊고 넓음을 알고는 표를 올려 산기시랑으로 추천했다. 진수가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감당했으므로 황제는 그를 다시 치서어사로 임명하여 곁에 두었다. 이후 모친이 돌아가시자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태자중서자로 기용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병사했다.
진나라 무제 태강 원년(280)에 오나라가 멸망하는데, 이때 진수는 48세의 나이에 『정사 삼국지』를 완성했다. 저작으로는 『정사 삼국지』외에도 『고국지』50편, 『석휘』, 『광국론』, 『진박사』4권, 『진탄사』9권, 『익부시구전』10편, 『익부시구전갑기』2권, 『관사론』7편, 『제갈씨집』24편, 『한명신주사』30권, 『위명신주사』40권 등이 있다. 이상 12종의 저술은 모두 250여권(편)에 달하지만 그중에서 『정사 삼국지』가 가장 높이 평가 받는다.

책 소개

분야세계사
진수가 위나라를 정통에 놓으면서도 촉나라와 오나라에 독립된 역사적 위상을 인정해주려 했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진수는 촉나라 출신이고 촉에서 관리 생활을 했으므로 당대의 중요한 사건을 직접 보고 들었고, 통치자들의 경력을 잘 알았으며, 그 시대의 제도에도 익숙했다. 게다가 그는 《제갈씨집諸葛氏集》이라는 책을 편집했으므로 제갈량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했다.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의지할 것도 없이 노력만으로 천하를 차지하려고 했던 유비는 고향의 대학자 노식盧植에게 사사했으나, 공부보다는 잡기에 능했다. 하지만 평소 말수가 적고 아랫사람들에게 잘 대해주며 기쁨이나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다투어 그와 사귀고자 했다. 분명한 사실은 유비는 조조, 손견孫堅(손책, 손권)과는 출생 배경이 전혀 다르고 의지할 만한 지연이나 혈연도 없었다는 점이다.

유비는 형제도 없고, 자식 이외에는 친족도 없으며, 같은 고향 부하도 장비와 간옹簡雍뿐이었다. 따라서 유비가 한 왕조를 부활시킨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운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유비의 정치적 입지는 후한의 군벌 세력과 다른 점이 있으니, 구세제민救世濟民의 원대한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가 한실 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분투노력한 것은 유가적 가치관과 맞닿아 있음을 의미한다. 유비는 겸허한 성품의 소유자였고 백성을 가장 높은 위치에 두었다. 수십 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 조운 등이 온 힘을 다해 지켜주었다.

제갈량은 어려서 부친을 여의었다. 형주목 유표와 친분이 두터웠던 숙부 제갈현諸葛玄이 죽자 제갈량은 직접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은둔했다. 항상 자신을 관중管仲과 낙의樂毅에 비유했지만, 당시에는 이를 받아들이는 자가 없었다. 오직 박릉군의 최주평崔州平과 영천군의 서서(徐庶, 서원직徐元直)만 제갈량과 친교를 맺었다. 그 무렵 유비는 신야에 주둔하고 있었다. 서서가 유비를 만났는데, 유비는 서서를 인물로 생각했다. 때마침 서서가 유비에게 “제갈공명은 와룡臥龍”이니 “장군께서 몸을 굽혀 수레로 찾아가야만 합니다.”라면서 만날 것을 강력하게 권했다. 이에 유비가 제갈량을 만나러 갔는데, 모두 세 차례 찾아간 후에야 비로소 만났다고 한다. 여기서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한 인물은 서원직인데 그에 관한 전傳이 없으니 그의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다만 과장이 적지 않게 들어갔음은 분명하다.

촉은 어떻게 멸망했는가? 263년 10월 위나라 종회鐘會는 18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촉나라로 들어가는 입구인 검각을 지키던 촉나라 대장 강유姜維와 대치하게 된다. 한편으로 관중에서 내려온 등애鄧艾는 음평에서 강유로 들어와 촉을 급습하여 면죽에서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諸葛瞻이 이끄는 촉나라 군대를 크게 무찌른다. 촉나라 조정은 대경실색하여 투항을 결의했고, 망국의 군주 유선은 도읍 성도의 북쪽까지 온 등애의 군문軍門에서 스스로 손을 묶고는 자신의 죄를 사죄하고 항복했다. 이로써 촉나라는 유비에서 유선으로 이어지는 43년 역사를 허무하게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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