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사상』, 시인의 심장으로 유신을 증언하다!
『바람의 사상』은 유신시대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기록한 일기다. 이미 몇 해 전 『문학사상』 등에 그 일부가 연재되면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데, 이번에 ‘불나비의 기록’으로 연재된 일기를 포함해 지금까지 여러 지면에 발표된 70년대 일기를 한 권으로 정리했다. 정확히 1973년 4월부터 77년 4월까지 4년간의 기록이며, 출가 중이던 1959년에 쓴 21일간의 단식일기를 권말에 수록했다.
1972년 10월에 유신헌법이 선포되고 그 이듬해 1973년이 되면 박정희 정권이라는 전대미문의 독재체제의 폭력이 진행된다. 문인들을 비롯한 무수한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박해의 대상이 된다. 1975년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의 사형집행에 이르면 시대는 질식할 지경이 된다. 시인의 일기는 이러한 역사의 굽이굽이를 놓치지 않고 생생히 기록한다.
이른바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시인이 어떻게 역사의 풍랑에 휩싸이면서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문학가가 되어 가는지 정밀한 다큐멘터리처럼 기록하고 있다. 냉정한 사관의 서술인가 하면, 번뜩이는 시인의 아포리즘은 엄혹한 시대 한가운데서 시인이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오히려 선연하게 증언한다.
이 책에는 뒷날 『만인보』를 쓸 수밖에 없을 만큼 숱한 인물군상과 시대상황이 세밀하고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다. 한국 현대의 정신사, 문화사, 정치사에 기라성 같은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의 풍경들이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을 보면, 시대의 시인 고은의 인간관계의 폭과 깊이에 주목하게 된다. 김병익, 김윤식, 박맹호, 김현, 백낙청, 이문구, 이병주, 박태순, 임헌영, 최인훈 등을 비롯해서 신문학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박목월, 서정주, 김동리 등에 걸쳐 이어지는 문단 인맥은 고은의 삶과 그 실천 자체가 이 나라 현대문학사, 정신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한 리영희, 한승헌, 임재경, 남재희 등에 이르면 그가 당대의 지식인 집단과 얼마나 깊고 다채로운 교우관계를 두루두루 맺으면서, 시를 쓰고 현실에 발언하며 살았는지가 실감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