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덕 시인의 첫 시집인 『연두 공을 치는 여자』에는 삶의 여정이 세월의 지층처럼 쌓여있다, 그래서 한 시인의 일대기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시인의 기억 속에서 꺼낸 생활사는 요즘에는 볼 수 없는 시대상의 한 페이지 같기도 하다. 정안덕 시인에게는 생활이 시를 쓰는 일이고, 주변과 일상이 모두 시의 대상이 된다. 시인에게 시 쓰기는 생활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때 시는 일기처럼 생활을 드러낸다. 감각적인 표현법이나 상상력, 이미지 등을 작동시키지 않고 생활상과 심정을 그대로 진술한다. 일종의 팩트가 곧 시이다. 일찍이 보드리야르가 말했듯이 현대사회는 이미지가 실재를 압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지는 진짜의 세계가 아닌 가짜의 세계이다. 허상이 실상을 가리는 이미지의 부정적인 면을 생각할 때 ‘사실’ 중심의 시 쓰기는 시가 귀환해야 할 장소가 될지도 모른다. 은유, 환유, 상징, 이미지 등 시의 주요 장치인 이런 것들을 벗어나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해도 얼마든지 좋은 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