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권태롭지 않았던 순간을 상상했다
김도언은 자기 자신을 ‘권태주의자’라고 명명한다. 한국문학사에서 ‘권태’를 미적 감각으로 창안한 이는 물론 이상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김도언은 이상이 아니라 차라리 백석에 가깝다. 무슨 말인가? 김도언은 “실패는 나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이라고 “고해성사”를 한다. 이때 “실패”란 “숭고한 말들의 미래”의 불가능성을 뜻한다. “말들의 미래”는 결코 “닿지 않”으며 가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말들의 미래”가 “숭고”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도언은 “실패할 테지만 그 말을 찾아 또 떠나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런 맥락에서 말하자면 김도언은 지극한 낭만주의자다. “당신이 태어나지 않은 유일한 곳”이자 “당신이 돌아가야 하는 곳”인 “저쪽” 또한 “지옥”이라고 속삭일 때도 김도언은 냉정하나 낭만주의자이며, “나는” “탕진되는 잉여의 시간을 애도하지 않았고 남은 생애의 안녕을 바라는 기도를 올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죽지도 않았다”라며 결연할 때도 그는 무참하나 낭만주의자다. 심지어 “농담은 낭만주의도 아니고 마르크스주의는 더더욱 아니며 다만 이상하고 드문 비애일 뿐”이라고 토로할 때도 그는 지성적이나 낭만주의자다.
즉 그는 알고 있다, 이 세계는 온통 “지옥”이고 “저쪽” 또한 “지옥”이며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지옥”을 절대로 벗어날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김도언은 “피 냄새를 풍기”는 “아일랜드식 농담”이나 “이 세상의 모든 오해 중에서 피아노가 제일 좋다는 것은 가능한 도덕입니까”와 같은 “이상한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도언은 “진실하지 않아서 진실한 것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도무지 진실할 수 없기 때문에 진실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단 하나의 ‘진실’을 누설한다. “말들의 미래”는 단연코 도래하지 않는다는 진실 말이다. 따라서 “실패”는 당연하며, “은밀”하고, 사적이며, 외설적일 수밖에 없다. 김도언의 말 그대로 그는 “최선을 다해 더러워져서 최후까지 감추려 했던 자부심의 노골적인 적막을 완성하기 위하여” 시를 쓴 셈이다. 그리고 이 순간 그는 백석을 뛰어넘는다. 김도언은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라는 한국시의 정언명제마저 “한없이 우습고 형편없”는 농담으로 만든다. 김도언이 시집 도처에 매설해 놓은 “농담”들은 결국 “숭고한 말들의 미래”라는 “신념”을 남김없이 폭파시켜 버린다. 요컨대 김도언은 지금 실재(Real)를 돌파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한국 시사에서 가장 급진적인 낭만주의자다.
김도언 시인은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2012년 [시인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철제 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 『악취미들』 『랑의 사태』,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꺼져라, 비둘기』, 경장편소설 『미치지 않고서야』, 산문집 『불안의 황홀』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 『소설가의 태도』, 인터뷰집 『세속 도시의 시인』 등을 썼다. 『권태주의자』는 김도언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