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비의 양을 재다
평창 군주는 궁궐 내에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는 천방지축입니다. 아버지인 세자(후에 문종)도, 왕인 세종 대왕마저도 평창의 말이라면 무조건 받아 주곤 했어요. 영특하고 호기심이 많은 평창 군주는 아버지를 따라 비가 오고 나면 호미로 땅을 파서 비가 스민 정도를 측정했지요. 비가 내린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호미를 들고 땅을 파던 평창 군주는 난감하기만 합니다. 처음 파 본 땅은 거의 젖지 않았고 좀 떨어진 곳의 땅을 팠을 때는 꽤 젖어 있었지요. 또 평창의 손가락보다 더 깊이 땅이 젖어 있으면 아버지에게 얼마만큼 비가 왔다고 말해야 할지 아리송했지요. 시무룩한 평창을 위해 세자는 나랏일을 맡겼어요. 평창 군주가 어떤 나랏일을 하게 될지 기대해 주세요!
세계 최초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는 왜 조선에서 만들어진 것일까요? 조선에는 왜 강우량 측정기가 필요했던 걸까요? 문종이 측우기를 만들어야 했던 이유와 측우기의 쓰임, 자연현상에 굴하지 않고 과학적으로 극복하려 했던 조선의 모습을 생생한 이야기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