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그 학사들이 주석한 사정전훈의본思政殿訓義本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은 성리학性理學에 입각한 정통론적 입장에서 쓰인 강목체綱目體 사서史書로 조선시대 학자들의 역사에 대한 논의, 평가, 서술에 있어서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이는 조선시대 임금들이 경연經筵에서 읽던 대표적 역사서로 이와 관련된 내용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자주 등장한다.
특히 ≪자치통감강목≫을 중시했던 세종은 이 책을 무려 100독을 하였으며, 역사에 뛰어난 대신大臣들과 학사學士들에게 명하여 이 책과 관련된 서적을 모아 연구하여 주석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사정전훈의본 ≪자치통감강목≫이다. 사정전思政殿은 경복궁景福宮의 편전便殿으로 바로 세종대왕을 상징하는 것이고, 훈의訓義는 ‘의미를 해석한다.’는 뜻으로, ‘훈의’는 바로 ≪자치통감강목≫의 주석을 가리킨다.
서거정徐居正은 훈의訓義에 대해, 당시 중국의 여러 서책을 참조하였으며 글자의 음과 해석, 구두句讀까지 상세히 갖추었는데, 이는 모두 세종대왕의 재량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 정밀함은 고금에 없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서막序幕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17≫은 진晉나라의 멸망과 송宋나라,북위北魏로 양분되는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서막을 다루고 있다. 420년 진나라 공제恭帝가 송왕宋王 유유劉裕에게 폐위되는 내용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주자朱子는 ≪자치통감강목≫을 저술하면서 진나라가 멸망한 421년 이후를 무통無統으로 기록하여 당시 할거割據하던 여섯 나라 중 어느 한 곳도 정통正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수隋나라 문제文帝가 천하를 통일하는 589년까지 지속된다.
본서는 송 무제宋武帝 유유劉裕가 진晉나라를 찬탈하고 황제에 올라 중원을 장악하는 과정, 북위北魏가 북량北?을 멸망시켜 화북華北 지역을 통일하고서 송나라와 대립하는 과정을 그린다. 유유는 진晉나라 말 조정을 장악하였던 환현桓玄을 토벌하면서부터 정권의 입지를 다졌고, 뛰어난 무공과 통치 수완으로 송나라 창업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의 사후 태자 유의부劉義符가 뒤를 이었으나 방만한 행실로 축출당하고, 문제宋文帝 유의륭劉義隆이 뒤를 이어 30년간 재위하면서 송나라를 발전시켰다. 이후 태자 유소劉?가 반란하여 문제를 시해하는 과정에서 송나라가 어지러워졌으나, 효무제孝武帝 유준劉駿이 난리를 진압하고 즉위하면서 본서가 끝난다.
한편 북위北魏의 경우는 명원제明元帝 탁발사拓跋嗣에서 시작하여 태무제太武帝 탁발도拓跋燾, 문성제文成帝 탁발준拓跋濬까지를 다룬다. 탁발도는 재위한 30년간 그의 심복인 최호崔浩와 함께 하夏나라, 유연柔然 등을 정벌하고, 도교 제단인 천사도장天師道場을 세우는 등 정치의 대소사를 처리하였다. 그러나 최호 등 한친漢人 출신의 관료들을 견제하고자 국사國史 사건을 계기로 이들을 제거한다. 이후 주변의 참소로 태자 탁발황拓跋晃이 근심 속에 죽자 종애宗愛가 후환을 두려워하여 탁발도를 시해하는데, 본서는 탁발준이 이를 평정하고 즉위하는 초기까지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