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라보다 큰 사람인가?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은?
‘생명수업’은 생명을 깨우쳐 그 신비를 알게 하고, 신비로운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를 아는 공부이다. 생명수업은 나라보다 큰 나, 지구보다 큰 생명의 길을 찾아가는 인생의 수업이다. ‘생명수업’이란 한 인간이 자기 생명의 최대치를 발현하고 천재를 회복하여 살아가게 하는 수업이다.
생명수업이 필요한 이유?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이 지금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유는 우리들이 당연히 지니고 있어야 할 신비로움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돈의 노예, 물질의 노예, 평판의 노예, 일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우리 사회는 신비와 멀어지고 있다. 신성이 사라진 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할지라도 언제든 쇠락하거나 불행에 정복당할 운명이다.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은 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나고, 생명의 심연을 보는 희열을 나누고자 기획되었다. 생명에는 몸과 마음의 설계도가 비밀스럽게 내장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길도 그려져 있다. 생명에는 한 인간이 상승하고 확장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생존의 비의가 담겨 있다. 생명에는 그 생명이 자유롭게 되는 길이 있다. 생명에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생명으로 살아갈 이치가 담겨 있다.
신비로운 것과 신비롭지 못한 것의 차이는?
신비로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신비로운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국민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다. 신비로움이 결핍된 삶은 쉽게 몰락하고, 신비롭지 못한 나라는 쉽게 망할 수밖에 없다.
문명인의 생명은 가축처럼 길러지고 관리된다. 사회의 가축, 학교의 가축, 국가의 가축들이다. 사육되는 삶은 필연적으로 생명의 발현이 제약되고 방해 당하게 된다. 따라서 사육되는 삶은 신비롭지 못하다. 신비롭지 못한 것은 아름답지도 못하다. 사육당하는 것들은 시시해 보이고 진심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신비로운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국민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다. 신비로움이 결핍된 국민은 쉽게 몰락하고, 신비롭지 못한 나라는 쉽게 망할 수밖에 없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신비로운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를 알아보는 깊은 눈을 갖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신비의 회복이 생명을 회복하는 생명수업을 통해 이루어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나라보다 큰 사람인가?
당신은 지구보다 큰 생명인가?
『신비로운 나, 생명수업』은 생명의 신비로운 본성, 상승하고 확장되는 마음의 이치를 전하고자 스토리텔링에 많은 공을 들였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신비로운 죽음, 생명의 깨달음, 생명과 신성, 생명교육으로서 생명 감수성 수업의 길을 제시하였다.
생명의 실천수업으로서 소로우, 러스킨, 톨스토이, 간디의 삶에 대한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도 독자를 생명수업의 비경으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생명문화, 생명정치, 생명경제, 생명미학 등을 오가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창조적 스토리텔링은 생명의 심연을 보는 희열을 줄 것이다.
나라보다 크지 않은 나로 이루어진 집단은 아무리 애국을 운운해도 나라를 지킬 수 없다. 나라보다 크지 않은 사람은 자신조차 온전히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지구보다 작은 이기적 인류는 지구를 지킬 수 없다. 당신은 나라보다, 지구보다 큰 사람인가?
이 책의 다른 특징은?
작가는 어린이를 설득하는 문체의 소유자이다. 그는 쉽고 단순하지만 깊이와 느낌이 있는 육감적인 문장으로 생명을 말한다. 육감적이란 것은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라는 것이다.
작가는 생명에 대한 이해와 사유를 증진하기 위해 ‘참새도 진선미를 안다’,‘여자는 신비로운 남자를 따라갔다’ 등 다수의 철학적이고 동화적인 창작 우화를 36편 에세이마다 적재적소에 곁들였다. 우화를 통해 생명을 사유하다보면 저절로 생명이해의 높은 단계에 이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이 책의 독자는 특정 연령이나 계층이 아니라 생명을 지녔고 생명에 대해 관심을 갖는 누구나 라고 말한다. 이 책의 글자 크기가 보통보다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