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등불로 우뚝 서다
1949년 3월 29일, 해방 후 월남 이상재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 추도회가 열렸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추도사를 읽었다.
“나는 해방이 되고 얼마 후 미국에서 귀국할 때 일본의 도쿄를 거쳐서 왔습니다. 비행기에서 도쿄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는데, 미국 공군기들의 폭격때문에 도시 전체는 폐허였습니다. 그 순간 생전 이상재 선생께서 일본의 병기창을 보고 외쳤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월남 선생님은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라며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이상재 선생의 예리한 통찰력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일제의 암흑시대에 그런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1957년 이상재 선생의 유해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경기도 양주군 장흥명 삼하리로 이장되었고, 1962년 이상재 선생은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그가 떠난 후 그의 행보는 더욱 빛이 났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의로운 그의 삶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상재 선생은 의(義)에 맞지 않는 일은 국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반대하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월남 이상재는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날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구한말 때부터 우리나라 역사의 가장 암흑기인 일제강점기 때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민족 지도자로서 나라를 위해 자기의 몸을 바쳤다.
그가 이처럼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지도자로서 자기 사명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투철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나라를 잃은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정신과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 기독교청년회(YMCA)를 이끌면서 비전을 제시해주었다.
그는 오늘까지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영원한 스승이 되어 참 길을 제시해주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영원한 젊은이의 참된 이상(理想)인 이상재를 만나보길 소원한다.
이상재 (李商在 1850~1927)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불의한 세력에 맞서 정의를 실천했던 월남(月南) 이상재. 왕 앞에서 탐관오리의 뇌물을 태워버린 일화는 이상재의 정의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준다. 이상재는 외세에 빌붙어 매관매직을 일삼던 이들이 고종에게 뇌물 바치는 것을 보게 됐다. 그는 “상감 계신 방이 왜 이리 추운가”라고 일갈한 뒤 고종이 보는 앞에서 서슴없이 그 뇌물을 난로에 넣어 태워버렸다. 그러고는 통곡하며 왕 앞에 엎드려 대죄했고, 이에 고종은 도리어 눈물을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렇듯 이상재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바랐다. 그는 “기독교가 아니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따랐다. 성경 말씀을 믿음으로 행하며 불의에 굴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오늘날 부정과 부패로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를 일깨워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잡아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월남 이상재는 독립협회, 신간회, 3·1운동 등 다양한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젊은이가 나라의 미래라는 소명을 가지고 YMCA, 조선교육협회의 일에도 힘썼다.
규장 신앙위인 북스
청소년들에게 믿고 따를 수 있는 대상을 소개하는 것은 아주 소중한 일이다. 꿈과 비전이 꿈틀대는 시기인 만큼 인생이 통째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믿음의 거장들의 일생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이 시리즈를 통해 많은 청소년들이 바른 신앙과 인격을 배우고,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으로 자라나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