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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조지 휘트필드
글쓴이
오병학 저
출판사
규장
출판일
2017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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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분야기독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 사람

1770년 10월 2일,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뉴베리포트 제일장로교회에서 조지 휘트필드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그와 헤어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한평생을 헌신했던 조지 휘트필드를 떠나보냈다.
그는 생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만약 외국에서 죽더라도 공식적인 장례식은 영국에서 치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장례식 집례는 존 웨슬리 형제가 맡아주었으면 합니다.”
이런 당부에 따라 존 웨슬리는 영국 런던에 있는 무어필드 장막(Tabernacle)에서 조지 휘트필드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이렇게 먼저 떠난 친구를 추모했다.
“나는 그가 생전에 이룩한 업적에도 큰 찬사를 보내지만 그보다 앞서 그의 인격에 더 큰 찬사를 보냅니다.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는 위대한 정신 그리고 온유함과 자애로움, 인내, 탁월한 용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드러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찰스 웨슬리도 그의 숭고한 정신에 찬사를 보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를 높이고 귀중한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만 자기의 삶을 다 바쳤다. 그는 정녕 모든 인류의 연인이다.”
조지 휘트필드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윌리엄 카우퍼는 “그는 친구도 많았지만 반면에 그를 미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휘트필드는 그들을 위하여 성경 위에 눈물을 떨구며 기도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불쾌한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헨리 벤 신부는 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얼마나 엄청난 사역을 감당했는지 잘 설명해준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한 주일에 40시간 이상씩 거의 30년 동안이나 한 번도 쉬지 않고 설교를 계속 해왔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은 언제나 수천 명에 이르렀고, 수만 명 앞에서 설교한 적도 많았다. 그의 그런 열심과 열정은 참으로 놀라웠다.”
조지 휘트필드는 성경에서 가르친 진리를 그대로 믿었고, 이 진리를 평생 동안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거했다. 그는 이 진리로 수많은 영혼들을 감동시켰으며, 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또 그는 사랑을 실천하며 섬기는 종으로서 평생 동안 경건한 기도의 삶을 살았다.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조지 휘트필드의 숭고한 삶을 배우기 바란다.

[인물 소개] 조지 휘트필드 (George Whitefield, 1714~1770)
묵묵히 겸손함으로 섬겼던 조지 휘트필드. 그는 1714년 12월 16일에 영국 글로스터에서 태어나 18세기 설교와 부흥의 거장으로 자라난다. 그는 열여덟 살 때 옥스퍼드 펨브룩 대학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존 웨슬리를 만나 홀리 클럽에서 함께 활동하며 거듭남을 경험한다. 그 뒤 성직자의 길을 가기로 결단하고 영국 국교회에서 사제를 안수 받는다. 그러나 거듭남을 강조하는 설교로 영국 국교회에서 배척을 받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존 웨슬리와도 신학 사상의 차이로 결별하게 된다. 그런 중에도 자신의 입장을 항변하기보다는 묵묵히 주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한다. 조지아 주에 베데스다 고아원을 건립하고, 신대륙 대각성 운동에 불을 지핀다. 그는 영국국교회의 배척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야외설교를 하게 된다. 이는 오히려 많은 이들을 하나님나라로 이끄는 좋은 기회가 되며, 야외설교의 선구자가 된다. 영국과 신대륙을 오가며 30년 동안 1년에 천 번 정도, 평생에 3~4만 번의 설교를 했고, 공식적인 대중 집회만 1만 8천 번을 인도했다. 훗날 감리교의 수장 자리를 한때 신앙의 입장 차이로 결별했던 존 웨슬리에게 양보하는 등 겸손하게 주변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으로 참 신앙인의 본을 보이기도 했다. 1770년 9월 30일, 안타깝게도 56세라는 젊은 나이에 하나님 곁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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