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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 시집
글쓴이
김억 저
출판사
범우사
출판일
2020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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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김억

1896년 본관 경주, 음력 10월 30일 평안북도 정주군 관주면 관섭리 1798번지에서 아버지 김기범金基範과 어머니 김준金俊 사이에서 태어났다. 안서는 이곳에서 10대의 중반까지 살다가 오산학교에 진학하면서 거주지를 옮겼다고 전한다. 본명은 희권熙權인데 후에 ‘억億’으로 개명, 아호는 안서岸曙.

1910년대 후반 낭만주의 성향의 [폐허]와 [창조]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창조(創造)], [폐허(廢墟)], [영대(靈臺)], [개벽(開闢)], [조선문단(朝鮮文壇)],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시·역시(譯詩)·평론·수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한편, 에스페란토의 연구에서도 선편(先鞭)을 잡고 그 보급을 위하여 강습소를 열기도 하였으며, 『개벽』에 「에스페란토 자습실」을 연재하여, 뒤에 간행된 『에스페란토 단기강좌(Esperanto Kurso Ramida)』라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에스페란토 입문서가 되었다.

또한, 김소월(金素月)의 스승으로서 김소월을 민요시인으로 길러냈고, 자신도 뒤에 민요조의 시를 주로 많이 썼다. 김억은 1924년에는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 당시까지 낯설었던 해외 문학 이론을 처음 소개함과 동시에 개인의 정감을 자유롭게 노래하는 한국 자유시의 지평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된다. 서구의 상징시를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하여 1920년대 초반 상징시풍이 문단에 정착하는 계기를 열었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한시의 번역이나 민요 발굴 등 전통적인 정서에 대한 관심으로 방향을 돌렸다.

1930년대 말에는 김포몽(金浦夢)이라는 예명으로 대중가요 작사 활동도 벌였다. 작사가가 된 것은 생활고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생소한 예명을 사용한 이유는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서 문단에서의 지위가 남달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작사한 노래 가운데 선우일선의 「꽃을 잡고」는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사한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의 「아아 야마모토 원수」(1943) 등 친일 시를 발표했다. 친일 저작물 수는 시 4편을 포함하여 총 6편이 밝혀져 있다. 국민총력조선연맹과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간부를 지내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고, 북한으로 간 유력 인사들이 1956년 평양에서 결성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을 지낸 뒤로 행적이 불분명하다. 1958년 평북 철산군의 협동농장으로 강제 이주되었다는 설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월북 작가들과 함께 언급이 금기시되다가 1988년 해금 조치 이후 다시 조명을 받았다.

저서로는 『기탄자리』, 『해파리의 노래』, 『오뇌의 무도』(개정판), 『신월』, 『잃어진 진주』, 『원정』, 『금모래』, 『봄의 노래』, 『안서시집』, 『사상만필』, 『모범서한문』, 『망우초』, 『소월시초』, 『안서시초』, 『동심초』, 『꽃다발』, 『지나명시선 백낙천집』, 『애국백인일수』, (일본단가 번역), 『야광주』, 『먼동이 틀 제』, 『금잔디』, 『민요시집』, 『옥잠화』 등이 있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일제하에 김소월 스승이었던 안서 김억 시인의 창작 시집

안서 김억(1896~1950?)은 우리 문학사상 최초로 본격적인 근대시를 발표한 시인이었다. 또한 그는 근대적인 시집을 처음 상재한 작가이며 한때 그의 손으로 이루어진 사화집의 수가 가장 많은 시인이기도 했다. 그가 엮어낸 역시집 『오뇌懊惱의 무도舞蹈』는 1921년 3월에 상재되었다. 『오뇌의 무도』 이후 그는 자작自作과 번역 시집을 합해 모두 20여 권에 이르는 사화집詞華集(1인 또는 다수 작가의 문장을 발췌해 엮은 책)을 보여 주었다. 물론 8·15 이후 본격적으로 활약이 시작된 시인 가운데는 이보다 더 많은 양의 사화집을 상재한 예도 있으나, 일제치하인 시인 가운데 김억처럼 많은 숫자의 사화집을 상재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프랑스 상징파 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해외시의 수입과 수용에도 독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아울러 그는 시론을 중심으로 한 해외 문학이론의 수입, 소개에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시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때 에스페란토의 보급과 교육에 힘쓴 바 있었는가 하면 김소월金素月과 나도향羅稻香을 필두로 몇 사람의 우수한 시인과 작가를 우리 문단에 소개하거나 그 문단활동을 도운 공로자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한국문학사에 끼친 김억의 발자취는 매우 뚜렷하며 다양하다. 김억이 가장 크게 비중을 둔 것은 번역이 아니라 여기에 소개한 창작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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