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에서는 드물게 삼교의 정립이 이루어진 시기가 있었으니 바로 북송 초기였다. 북송은 문치주의를 채택하여 학문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였으며, 국가 차원에서 당시 대중화되기 시작한 인쇄술을 바탕으로 삼교의 경전들을 전집 형태로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춘추전국의 제자백가를 능가할 정도로 많은 뛰어난 학자들이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 그야말로 학문의 최대 융성기를 누렸으며, 한편에서는 성리학이 막 태동하고 있었다. 이 당시 삼교는 서로 비판적 관점을 지양하고 상호 회통적 경향을 두드러지게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