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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 시선
글쓴이
율곡 이이 저
출판사
평민사
출판일
2020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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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율곡 이이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율곡 이이는 1536년(중종 31) 오죽헌에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강릉이고, 고향은 파주 율곡으로, 그는 율곡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여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이래 모두 아홉 번의 과거에 합격하고 그중 일곱 번 장원하였다.

선조 2년, 홍문관 교리였던 율곡은 일종의 연구 휴가인 사가독서를 얻는다. 그 기간에 열정적인 정책 제안서인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제출하지만 그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망한 그는 관직을 떠난다. 이후 은거와 출사, 사직을 반복하다 38세에 홍문관 직제학으로 다시 중앙 정치에 복귀한다. 이듬해 정3품 우부승지가 된 율곡은 기상 이변으로 인해 당황한 선조가 신하들에게 제언을 구하자, 사회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한 [만언봉사萬言封事]라는 상소문을 올린다. 그 밖에도 평생 학문과 저술에 힘써 제왕의 지침서인 『성학집요聖學輯要』, 선비들의 기본 교육서인 『격몽요결擊蒙要訣』 등 많은 저술을 남긴다.

1582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세 번이나 사양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해 7월에 「인심도심설」을 지어 바쳤고 『김시습전』을 지었다. 8월에는 형조판서가 되고, 9월에는 의정부 우참찬이 되었다. 선조의 신임을 받아 고위직을 두루 거친 율곡은 병조판서로 있던 1583년(선조 16), 조정에 나아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 군정을 마음대로 하고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이유로 동인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이듬해 정월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개혁안들은 당시 거의 채용되지 못했으나 그의 학문과 경세 사상은 조선 후기의 학자와 정치인들에게 계승되었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율곡(1536~1584)은 조선 중기의 목릉성세(穆陵盛世)라는 풍요로운 문운(文運) 속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명문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제로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하였다. 어머니 사임당 신씨의 인자한 보살핌 속에서 일찍부터 천재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16세 때 유가경전은 물론 제자서를 두루 섭렵하고, 나아가 불학(佛學)에 대한 관심까지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율곡은 우리나라의 주기론을 정립하면서 이후의 기호학풍의 밭을 일군 학자이다. 그가 젊어서 책제(策題)에 응하여 지은 『천도책(天道策)』은 중국의 학자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이름을 떨칠 만큼 탁월한 사상을 전개하고 있었다. 율곡의 주기론은 당신의 성리학이 다소 관념적으로 흐르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자연 자체의 생성원리로부터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여 제시된 것이었다. 따라서 자연의 실체인 기(氣)를 통해서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였고 여기에서 인성(人性)도 또한 자연의 본질인 기(氣)를 근거로 하여 논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탓에 자연 율곡은 관념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때로는 선조에게 『진시폐소(陳時弊疏)』, 『만언봉사(萬言封事)』 등의 시무책을 제시하여 민생을 확립할 것을 주장하면서 백성들의 고충을 덜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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