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인가? 의무인가?
함부로 용서를 이야기하지 마라!
지금 우리 사회에는 느닷없이 불어닥친 힐링Healihg 열풍과 맞물려 ‘용서와 화해’라는 주문이 강물처럼 흘러넘친다. 서로 다른 이해와 갈등 속에서 크고작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는 시대. 용서하고 또 용서받는 일야말로 버거운 인생살이를 치유해줄 최상의 처방전처럼 통용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희생자 가족이거나 지인이라면? 그때도 당신은 “먼저 용서하십시오. 그래야만 진정한 치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는 충고에 기꺼이 동의할 수 있겠는가? 무책임하게 남용되는 용서 신드롬과 간단치 않은 이 문제의 본질을 빗대 C.S. 루이스는 말했다. “사람들은 용서가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한다. 정작 자신이 용서할 일을 당하기 전까지는…….”
"그들을 꼭 용서해야 하는 건가요?” 『용서라는 고통』은 살인 범죄로 10대 아들을 잃은 어느 여인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당시 교구 사제였던 저자 스티븐 체리는 그녀의 손을 부여잡고 겨우 입을 뗀다. “용서를 떠올리기엔 아직 이릅니다. 너무 이르지요.” 진실을 말하자면, 용서에는 그 이상이 필요했다. 시간이 명약이라는 말 넘어 더 중대하고 본질적인 것들이. 용서를 주제로 이미 박사논문까지 쓴 체리였다. 하지만 막상 ‘용서가 절절한 현실이 돼버린 피해자의 고통’ 앞에서 그동안 자신이 믿고 의지해온 이론과 종교적 신념은 맥을 못 추는 물거품이었다. 그날의 경험 이후 체리는 더 집요하게 이 문제에 매달렸다.
신학과 의학, 심리학과 인지학의 연구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끔찍한 사고와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 그들의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의 파고를 함께 체험했다. 저 유명한 진실화해위원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남아공에 갔을 때는 옛 아파르트헤이트의 경계선을 종횡무진하며 통찰의 실마리를 전해줄 온갖 사람들을 만났다. 그 만만치 않은 탐색과 깨달음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이 이 책 『용서라는 고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