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시 형성기 시인들은 표면적으로 한문에 배타적이었지만, 그들은 이를 활용하면서 자신의 시론과 시를 썼고, 한시를 읽고 번역했으며 한시를 직접 쓰기도 했다. 따라서 현대문학은 국문으로 된 텍스트만 연구대상으로 삼는다는 암묵적 전제에서 벗어나야 근대 시인들의 온전한 실체를 포착할 수 있다. 또한, 궁극적으로 ‘근대문학’은 중세 공동문어에서 벗어나 민족어를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라는 거시적 통찰이 참이라고 해도, 중세까지 절대적 영향을 끼쳤던 한문이 근대문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 없다. 특히 근대문학 형성기 문인들은 유년기에 한학을 학습하고 한시를 읽었기 때문에, 서구나 일본 근대문학을 수용할 때 이러한 한문맥의 관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서구적 근대에 비추어 한국 근대시의 ‘근대성’을 추출하거나 언어 민족주의적 전제에 따라 ‘조선(어) 전통’만을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근대시의 실상을 비추어 한국 근대시의 독특한 ‘근대성’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거의 주목되지 못했던 한문맥과 한국 근대시 형성이라는 주제에 주목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근대문학의 근시안적 태도를 극복하여 국문시와 한시의 상호작용을 살피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한국 ‘근대’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