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기교를 잘 활용하면 긴장 속에서 세련된 맛과 멋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권서각 시인은 효율적인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묵직하고 담담하오새미 시인에게 자연은 인간과 같은 존재다. 그의 시에서 자연의 행위는 인간의 행위에 유추된다. 특히 자연의 변화는 인간의 창조 행위와 같다. 시집 첫머리에 실린 「비의 서체」는 이를 잘 보여준다. 먹구름은 누군가 먹을 간 벼루요, 내리는 비는 먹물이다. “초록 새순들이” 그 “빗물을 찍어” “들판에 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소나기가 내릴 때엔 이렇듯 자연의 만물이 협동하여 한 편의 서예 작품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은 예술가이다. 자연이 한 사람의 몸이라면 구름은 심장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창작 작업에서 “구름의 감정이 관건”이라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구름의 감정에 작품의 “선과 모양과 짜임새”가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가 달려 있다. 이 빗줄기로 이루어지는 자연의 예술이 가지는 특징은 모든 곳이 화선지가 된다는 것이다. 자연은 “처마 안쪽에도”, “우산을 받고 가는 사람들의 옷자락에도” 수묵화를 그린다. 또한 예술품을 대하면서 우리 사람들이 기쁨을 느낄 때처럼, “소나기로 한바탕 흘려 쓴 초서체는/풀들을 춤추게” 한다. 이렇듯 오새미 시인의 상상 세계에서 자연은 “곱고 운치 있”는 서체로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존재이자 그 자체가 또한 예술 작품이다. 그뿐인가? 자연은 허공에 구름의 집을 짓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이 자연이 만들어낸 건축 세계에 대해 시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중략) 오새미 시인이 조명하는 사람들은 주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가령 「외발 의자」에서는 “다리 하나로 살아가”면서 “낡은 카세트”로 찬송가를 틀어놓고 “시장 바닥을 기어다”니는 사내를 조명한다. 시인의 시선은 “눈시울이 붉어” 지고 있는 “노을”이 되어 그 사내의 “종아리를 어루만”진다. 「느티나무 학교」에서는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소녀가장 은희”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렇다고 시인이 이들로부터 고통과 슬픔만을 읽어내는 것은 아니다. 이 시에서 시인이 “소녀가장 은희”로부터 씩씩하고 밝은 모습을 포착하고 있듯이, 그는 아픈 이들로부터 어떤 희망의 힘이 형성되는 모습 역시 읽어내고자 한다. 아래의 시를 읽어보자. ―이성혁(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