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전선에서 지워진 여자들
상업적 성착취 피해자와 일본인 ‘위안부’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하다.
지금까지 일본군 성노예제는 주로 일본제국의 한국 식민 지배와 한국 국민과 자원에 대한 수탈이라는 맥락에서만 다뤄졌다. 일본군 성노예제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가 성차별이라고 볼 때조차, 전통적 가족관과 결혼관에 사로잡힌 한국 남자의 봉건 가부장제 관습이 딸을 인신매매에 취약하게 했다는 시각에서만 봤다. 한국 가부장 문화의 순결과 효도 강요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상업적 성착취가 일본군 성노예제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은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일본 남자들은 1937년 전쟁에 돌입하기 훨씬 전부터 일본제국 전역에서 이미 포주 짓과 성착취를 일삼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 사실에 주목한다고 해서, 이 책이 박유하나 소정희 같은 학자의 주장과 같은 길을 간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이 내리는 결론은 그런 학자들과는 정반대다.
『‘위안부’는 여자다』는 ‘위안부’로 억류된 여자들이 감내해야만 했던 피해의 기저에는 전쟁과 군국주의보다도 성착취와 포르노라는 남성 우월적 제도가 깔려 있다고 지적하는 책이다.
“우리가 일본군 성착취 업소에 억류됐던 여자들의 피해를 성착취라고 인정하게 된다면, 그들을 성노예로 삼았던 과거, 그들에게 페미사이드가 자행됐던 과거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성착취라는 제도를 근절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생긴 처참한 역사적 결과가 된다. 우리가 바로 이 순간 성착취가 벌어지도록 용인하는 한, ‘할머니’ 생존자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위안부’ 정의 운동의 선봉에 서 있지만 일본군 성노예제의 역사를 ‘전시 성폭력’이라는 틀에서 접근하여 전쟁에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정의하고, 민족주의 운동과 결합하여 반일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는 데 이용하고 있다. 이 책이 그동안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여성들의 의문을 해소하고 전시 ‘위안소’와 같은 참혹한 만행이 발생한 궁극적인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분석하는 데 있어 대안적인 시각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듯, 우리는 그 궁극적인 책임을 평시의 민간 성착취 제도에 물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