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요시무네가 1716년에 에도막부 제8대 쇼군으로 취임하자 1718년 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통신사를 요청하였다. 조정에서 이를 받아들여 1719년 정사 홍치중, 부사 황선, 종사관 이명언을 파견하였는데 이때가 일본의 유학자들이 조선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하고 문단의 세력 교체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9차 통신사 사행원 가운데 여러 명이 사행록을 썼으니, 정사 홍치중이 『해사일록』을, 제술관 신유한이 『해유록』을, 자제군관 정후교가 『부상기행』을, 종사관 군관 김흡이 『부상록』을 기록하였는데, 각자 신분과 직책이 달랐으므로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록한 글을 비교해볼 수 있다. 『해사일록』에는 시가 한 편도 실리지 않고, 일본 견문기 외에 외교적인 의례나 공급되는 물품을 꼼꼼하게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