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역사속 인물들과 함께 말했던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읽고 세계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마치 소설처럼 펼쳐졌던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 있다가 기회가 되면 세계 역사를 좀더 읽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발견된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서양의 역사를 이룬 근간이 되었던 기독교에 대한 세계사적 흐름을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역사를 읽는다는 건 우리의 미래를 이루는 시야를 넓히는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지 말고 더 큰 미래의 역사를 키울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800여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이어서 읽는데 애를 먹기는 했지만 세계 역사의 근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게 읽고자 하였다. 아마 성경을 제대로 읽었다면 훨씬 더 쉽게 다가왔을 책이기도 했다.

서양의 방대한 역사를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보는 작업은 녹록치 않았다. 그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가 어떻게 생성되었나를 살펴보면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형과 관련이 있다. 십자가 형벌이 어떤 것이었나. 로마인들이 노예에게 가한 징벌이었다.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울뿐만 아니라 경멸을 받는 처형이었다. 이로부터 가장 낮은 자로부터 탄생된 그리스도의 존재는 우리의 죄를 씻는 것과 같았다.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 건 로마인들이다. ' 예수를 고문하여 죽인 로마제국은 마침내 예수를 하느님으로 숭배하는 제국으로 변모했다'(27페이지)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로마 황제)들도 예수를 그리스도(하느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인정하게 된 건 아이러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선포함으로써, 노예의 비천한 신분을 스스로 걸머짐으로써, 가장 낮은 사람들,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장 박해받고 학대받은 사람들의 심연을 몸소 겪었다. 바울은 이 거꾸로 세움의 신비한 경이로움을 사람들에게 어서 전파하고 싶었다. 십자가형을 혐오스럽다거나 어리석다거나 혹은 그 둘 다라고 생각하는 낯선 사람들에게 그 경이로움을 전파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125페이지)

그리스도의 부활후 바울은 갈라티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널리 복음을 전파하고자 했다. 남녀 평등의 사상이 바울을 멈칫거리게 만들었다는 게 중요하다. 예수가 여자인 마리아로부터 태어났어도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듯하다. 바울은 '여자의 짧은 머리는 남자의 긴 머리만큼이나 혐오스럽다고 말했다. 베일을 쓰지 않고 기도를 올리는 여자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상은 뿌리깊게 박혀 있었으며, 네로는 로마 시민을 위해 여자에게 창녀 역할을 하면서 쾌락을 원하는 남자의 욕구를 귀족의 딸들에게까지 들어주게 했다.

이 책 속에서 크게 와닿았던 것 중의 하나가 많은 기독교도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노예제도를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필요하다고 당연시 했다는 것이다. 성경을 연구한 사람들은 이 노예제도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고, 퀘이커교도들은 스스로 노예 제도 철폐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유럽에서 도출되었고, 미국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기독교도들은 각 지역에 선교사를 보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아일랜드의 경우는 도망친 노예가 기독교를 전파하기도 했다. 그들을 기독교의 품으로 포섭해 그 땅을 정복하여 다스렸다. 이 또한 침략 전쟁의 일환이었다. 그만큼 서양에 뿌리깊게 자리 잡았다. 하느님의 율법을 받아들이는 건 서양 뿐만 아니라 아랍에서도 자신들만의 율법을 정하였다.

독일 과학자들은 유대인을 하나의 인종으로 정의하길 주저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을 조절하는 건 전혀 범죄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세계대전의 주역인 나치스의 히틀러는 인종 청소를 한다며 많은 유대인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자손이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핍박을 받은 유대인들에게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아라곤의 캐서린 왕비를 두고서 앤 불린에게 마음을 빼앗긴 헨리 8세가 로마 교황청의 이혼 허가가 나지 않자 스스로 교회가 되고자 하여 만든 건 헨리 8세의 여인들을 통해 영화나 소설로 많이 나타나 익숙한 역사다. 성경을 연구한 학자들은 사탄과 이단의 존재를 들추었고 이단에 관련된 자들을 처벌하였다. 성지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한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건 로마 교회 즉 교황청이 왕을 다스렸다는 사실이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읽지는 않았다. 매년 개봉되는 날을 기다려 영화로만 보았는데,이 원작이 나치가 일으킨 전쟁을 빗대어 말했다는 건 새로웠다. 히틀러가 죽고 3년 뒤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저 하나의 판타지로만 여겼었는데 전쟁의 참상을 그린 내용이었다니 영화 속 내용들과 화면들이 떠올랐다. 행복한 결말로 끝난 소설이지만 톨킨은 악의 왕 사우론은 격파되었지만 중간계 종족들의 왕국은 견디지 못했다. '기독교가 지속적인 영향을 발휘한다는 걸 증명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의 '최종 승리'를 입증하는 동시에 기독교의 쇠퇴 역시 증명했다.' (651페이지)는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다. 영화를 보았을 때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언젠가 시간을 내어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저자는 고대 아테네와 예루살렘에서부터 비틀스, 2015년 독일 총리 메르켈의 난민 유입 거절, 비틀스 멤버들의 이름을 딴 사형 집행자(저널리스트 살인 영상)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세계를 아울러 기독교 정신을 말하였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 무엇인가. '사랑'이다.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사랑을 노래하였던 비틀스를 말한 부분이 의아했었는데, 결국 톰 홀랜드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사랑'의 실천을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십자가형은 단순한 처벌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미니언[지배권]을 성취하는 수단이었다. 그것은 정복된 자들이 마음속 깊이 두려워하는 도미니언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권력의 공포는 권력의 지표였다. 공포는 권력이 늘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세상의 방식이었다. (721페이지)

읽으면서 퍽 재미있었고 익숙하고도 새로운 역사를 알아간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역사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광기에 휩싸이듯 역사의 발자취를 남긴다. 예수의 십자가형과 그로 인한 기독교의 탄생사는 서양의 역사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그것이 어떻게 발전되고 변화되어 왔는지 그 깊은 통찰을 말하는 독서였다. 기회가 되면 한번 더 읽어보면 더욱 좋을 듯 했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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