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는 여행, 아니면 환상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늘 가던 길이 아닌, 한 번쯤 경로를 이탈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는 법이니까.”
_본문 중에서
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더 흥미롭게 이야기할지 고민해온 정미진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자 연작소설인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가 미디어창비에서 출간되었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연인을 쫓는 『뼈』(2015)와 유괴 사건 이후 49일 만에 돌아온 소녀가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가는 『누구나 다 아는, 아무도 모르는』(2017) 이후, 정미진은 그간 보여준 스릴러가 아닌 ‘환상 소설’로 장르를 바꿔 발표했다.
지난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 이후, 불과 열 달 전만 해도 어디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던 세계는 문이 닫혔고 우리는 이동 자체가 위협이 되는 세상으로 떠밀리다시피 적응해야 했다. 이런 현실 속에 제목부터 ‘여행’이라는 설렘을 주는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는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난 여섯 명의 주인공들이 예측 불가능한 환상 여행기를 펼치며 대리여행의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운다. “머문 곳을 박차고 나가는 일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잠시나마 운명을 거스르고 있다는, 혹은 스스로 운명을 조정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위해 어디론가 떠난 사람들을 뒤쫓는 여정을 통해, 떠날 수 없는 현실에서도 기어이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본능에 사로잡히고 마는 우리는 여기에는 없고 그곳에는 있는 여행의 기쁨과 슬픔, 설렘과 두려움을 생생히 감각하게 된다.
소설 속 일곱 가지 이야기는 모두 다른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환희를 찾아서」)으로 시작해 베트남 달랏(「트린」), 터키 보드룸(「고양이 소년」), 프랑스 파리(「Merci(메르시)」), 포르투갈 에리세이라((「서핑 보호 구역」), 태국 방콕(「개를 끼고」)을 거쳐 인천 공항(「싫다고 해도 굳이」)으로 도착하는 이 비행에 기쁜 마음으로 탑승해줄 독자를 찾는다. 때론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주인공의 기쁨에 찬 표정에서 때론 언젠가 잃어버린 노트를 마주하는 주인공의 미소 속에서 문득 잊고 있었던 지난 여행 에피소드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