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와 시뮬라크르의 이중주
현대미학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철학 기행
이 책에는 이제는 유행이 지난 듯한 푸코, 들뢰즈 등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과 언뜻 보아 그들과는 별 관련이 없을 듯한 베냐민과 아도르노, 하이데거의 사상이 소개된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근대미학의 한계를 비판하는 사상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특히 베냐민은 우리가 아는 탈근대 철학의 거의 모든 주요한 개념들을 선취하고 있다. 근대미학의 주객이원론, 모방이론, 재현의 진리 등은 베냐민의 사상 속에 산산이 부서진다. 이제 주체가 있던 자리에는 다양한 맥락 가운데 해석의 자유가 펼쳐지고, 원본의 권위가 있던 자리에는 복제의 연쇄가, 재현의 진리가 있던 자리에는 형태와 색채의 유희가 들어선다.
『현대미학 강의』는 베냐민의 언어 타락을 통한 역사의 시작으로 시작해 보드리야르의 역사의 종말로 끝난다. 하지만 과연 끝일까? 진중권은 실재하는 모든 것이 사라진 사막의 원시적 숭고함처럼 보드리야르의 ‘사라짐’ 또한 역설적으로 숭고의 미학에 합류한다고 보며, 종말이 경계를 넘어 또 다른 사건으로 전화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프랑스에서 발생한 '포스트'담론이 지구촌을 휩쓸고 지나간 이후에 아직 미학계에 그에 필적할 만한 사건은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새로운 미학이론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이 책에 소개된 '탈근대'미학의 뒤를 잇는 새로운 사조로 숙성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따라서 『현대미학 강의』에 소개된 이론들은 앞으로도 한동안 학적 담론과 미적 비평에서 주도적 패러다임의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