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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한 문장
글쓴이
박은형 저
출판사
파란
출판일
2020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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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박은형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다. 2013년 <애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흑백 한 문장>을 썼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흑백 한 문장』의 마지막 시(「그 나무 붉은 지문 밑」)에서 시인은 “그럼에도 그 꽃나무 아래서 만나자”고 말한다. 시인은 먼나무 아래로 “딱 슬픔 하나만 개종하지 말고 오”라는 말을 남겼다(「먼나무 편지」). 그것은 시인이 타자에게 폭력을 저지르지 않게 우리를 막아 줄 방편으로 슬픔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꽃나무”는 죽음과 울음으로 둘러싸여 있고, 아직 변질되지 않은 사랑을 꽃으로 피운 채 가만히 서 있다. 삼백 년이라는 시간을 오로지 “한 가지 말과 일색의 마음”으로 서서 가만히 꽃잎을 떨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식물의 가장 큰 특성이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 어떤 다른 것에게도 스스로의 의지로 위해를 가하는 일이 없다. 식물의 이러한 면모가 화자로 하여금 “제발 만지지 말아 달라는” 타자의 간청을 “헛된 다짐으로라도 지켜 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만든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식물은 쓰러진 타자를 일으켜 세우지도, 그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더듬어 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만지지 말아 달라”는 간청을 지켜 줄 수는 있다. 지금껏 타자화되던 존재들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일상적인 영역에 존재하던 다양한 폭력의 양상이 드러나는 시대에 우리는 쉽게 타자에게 다가갈 수 없고 다가가서도 안 된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타자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멈추는 동시에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서로 간의 거리를 조절하는 일이다. 시집에서 ‘우리’는 언제나 지나가고 엇갈리는 존재들이지만 「그 붉은 나무 지문 밑」에서만 “잠시 서로를 알아”본다. 시인은 바로 그 지점에서 가능성을 본다. 그래서 “그럼에도”이고, “그러니까 더욱”이다. 슬픔의 길을 따라 도착한 꽃나무 아래에는 “꽃잎경”을 “알아듣게 고쳐 건네는” 시인이 있다. “꽃잎경”은 잠시나마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그 꽃나무 아래”로 수많은 ‘당신’들을 부르는 초대장이다. 『흑백 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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