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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 가져오지 못했다
글쓴이
이효복 저
출판사
문학들
출판일
2020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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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이효복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76년 『시문학』에 「눈동자」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달밤, 국도 1번』 『나를 다 가져오지 못했다』, 부부 시집 『풀빛도 물빛도 하나로 만나』가 있다. 부부교사, 부부시인으로 TV에 출연하기도 하였으며, 부부 시화전 <시가 꿈꾸는 그림 그림이 꿈꾸는 시>(그림 홍성담 외 7인)를 개최하였다. 오랜 기간 중고교 국어 교사로 재직했고, 대안학교와 신안섬 등에 문예창작 교사로 출강하였다. 한국작가회의와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이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이효복 시인, 등단 44년 만의 첫 시집
함축미 속에 배인 역사적 상흔


노트르담 대성당 벽 한구석에는 ‘아나키아’라는 말이 희랍어로 새겨져 있다고 한다. ‘숙명’. 우리가 흔히 ‘노틀담의 꼽추’로 기억하는 책 『노트르담 드 파리』의 집필 동기가 된 말이기도 하다. 1831년, 28세였던 빅토르 위고는 이 말에 영감을 받아 6개월 만에 자신의 대표작이 된 이 책을 완성했다.

이효복 시인의 첫 시집 『나를 다 가져오지 못했다』(문학들 刊)에는 ‘아나키아’라는 말이 등장한다. 시집 맨 앞 ‘시인의 말’을 보자. “내가 가두려고 했던 것들/나를 스쳐 간 무수한 점멸/내가 본 첫 어둠/아나키아”. 그리고 본문 중 「아, 나의 슬픈 콰지모도」라는 시에는 “파멸의 시간에 맞춰져 있는/눈부신 아나키아의 시계”가, 시집의 마지막 편인 「나의 꿈」에는 “시적 영감/아나키아 숙명”이 등장한다. 이 말에 얽매이지 않더라도, 천천히 시집을 음미하다 보면, 이 시인이 꿈꾸는 세계의 윤곽이 희미하게나마 드러나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기 전에 독자의 마음에 남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이 ‘아나키아’라는 말이다.

아직도 내 노래가 울리고 있어요
한번만 내 노래를 울리게 해줘요
노트르담 대성당 뒤편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종지기 꼽추 콰지모도
자유로운 영혼의 집시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가장 어두운 어둠
파멸의 시간에 맞춰져 있는
눈부신 아나키아의 시계
숙명

아, 나의 슬픈 콰지모도
내 노래가 울리고 있어요
내 노래를 울리게 해줘요
- 「아, 나의 슬픈 콰지모도」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와 그의 운명의 대리자인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신부 프롤로와 근위대장 페뷔스, 이들의 사랑과 욕망, 운명의 대서사가 펼쳐지는 『노트르담 드 파리』와 이효복 시집이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맺고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운명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사이에서 번민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이번 시집을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아나키아’를 설정하는 데 무리는 전혀 없어 보인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40년을 훌쩍 넘긴 시점에 출간된 이효복 시인의 첫 시집에는 세 개의 축이 어렴풋이 잡힌다. 1950년 한국전쟁과 1980년 5월 항쟁의 상흔, 여기에 선생으로서 겪은 아이들과의 사연이 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아이들과의 체험을 제외하고 앞의 두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시의 표면에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런 식이다.

몰살당한 붉은 선홍색 피
아버지는 끝내 침묵하셨다
- 「홍시」

많은 생략과 함축으로 시의 구체적인 정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시인은 선대의 많은 가족을 잃었다고 한다. 이런 시는 어떤가. “1980년 오월//시와 붓과 먹과 흑백의 조우//(생략)//내 아이들이 쓴 시, 한 뭉치를 들고/화실을 더트고 있었다//(생략)//흔들리며 멀어져 간 오월의 시화전은/페회를 모르고”(- 「대한민국 광주에도 소나기가 겁나게 온다」). 그러니까 시인의 기억 속에는 시화전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들의 시 뭉치를 들고 화실을 넘나들며 동분서주하던 길에 겪은, 40년 전 오월의 상흔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축에 “왁자한 언론의 숲에서 해마다 재생되는//나의 오래된 학교”(- 「갈대끝물방울」)가 선생이었던 시인의 기억에 각인돼 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축(상처)은 이번 시집 속에서 ‘너’와 ‘나’의 간극과 융합으로 변주된다.

너를 잡을 수 없었다
사실은 내가 줄기차게 달아나고 있었으므로
- 「바람의 느낌」 중에서

너만을 위해 살겠다던 그 모든 진실은 없다
벼랑에 앉아 보라
- 「낙엽」 중에서

나는 익어져야 비로소
너에게로 갈 수 있다는 것을
- 「태풍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중에서

시에 등장하는 ‘너’는 시를 착상할 당시의 특정한 인물일 수도 있지만, 시인의 또 다른 분신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신성불가침의 영역 혹은 절대적인 진리 혹은 모두가 바라는 보편적인 세계와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는 인간살이의 괴리 사이에서, 시인은 노트르담 대성당 벽에 새겨진 ‘아나키아’라는 단어를 매개 삼아 한국전쟁과 5월항쟁 그리고 아이들과의 부대낌을 한 편 한 편의 시로 빚어냈다. 이번 시집은 ‘아나키아적 줄타기’인 셈이다. 이효복 시인은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6년 『시문학』에 「눈동자」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풀빛도 물빛도 하나로 만나』(공저)를 펴냈고, 국어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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