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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없다
글쓴이
이시백 저
출판사
삶창(삶이보이는창)
출판일
2021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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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이시백

70~80년대가, 오늘날 정겨운 이야기로 둔갑하지만 사실 그 속은 슬픔과 억울함이 넘쳐흐르는 시대라는 것을 저자는 인식한다. 이를 역사소설의 형식 대신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그려내는게 특징적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동양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현재 경기도 수동면 광대울 산중에서 주경야독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작품으로 장편소설 『나는 꽃도둑이다』(2013), 『종을 훔치다』(2010) , 소설집 『갈보 콩』(2010) 과 자유 단편소설집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2006), 연작소설집 『누가 말을 죽였을까』(2008) 『벌레들』(공저),『응달 너구리』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2013), 산문집 '당신에게, 몽골'(2014) 이 있다.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을 받은 바 있으며 거창평화인권문학상(2014), 11회 채만식 문학상(2014)을 수상했다.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증조부와, 이야기하기를 즐거워하는 부친의 역사적 사명을 이어받아 어쩔 수 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메고 떠돌아다니는 이야기 보부상. 공식적으로는 소설가이나 정신적으로는 유목민을 자처하는 이시백은 스스로 말하기를, 한번 걸리면 평생 몽골의 초원과 황막을 헤매게 되는 치유불가한 ‘몽골 바이러스’의 숙주라 밝히고 있다. 요즘은 역병으로 발이 묶여, 초원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리움을 유튜브 채널 [몽골가는길]로 풀고 있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우화와 풍자로 빚어낸 민중사!

이시백 소설의 풍자와 해학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새롭게 펴내는 장편소설 『용은 없다』는 이전의 소설과 많이 다르다. 그것은 우화와 설화를 통해 민중의 근대사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풍자와 해학은 여전한 작가의 장점이지만, 마치 보르헤스의 기법을 차용한 듯 가상과 실제의 문헌을 동원해 다른 차원의 해학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민중의 삶을 디테일하게 그리면서 국가권력을 우스개의 대상으로 풍자한다. 오늘날 비판에 웃음이 사라지면서 비판 자체가 삭막해지는 세태를 작가는 소설적으로 넘어서고 싶었건 걸까?

몽룡과 아지의 만남부터가 예사롭지 않지만, 아지와 구렁이 사이에서 탄생한 쌍둥이 형제 금룡과 은룡의 존재도 근대의 수레바퀴에 깔린 민중의 캐릭터로서 손색이 없다. 이시백의 민중은 국가의 폭압에 정치적으로 저항하는 존재는 아니다. 도리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꾸준히 살아감으로써 국가를 무력화하는 존재에 가깝다. 특히 아무리 맞아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금룡의 존재가 그렇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캐릭터로 금룡이 설정되어 있지만 국가가 가하는 폭압이 민중에게 고통을 야기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고통은 금룡의 어머니인 아지나, 차남의 상징인 은룡, 그리고 애꾸왕 때문에 죽은 여동생 말희를 통해 드러난다. 작가는 한 존재에게 한 가지 역할을 입체적으로 부여하는 방법을 피하고 전체 인물에게 각자의 역할을 맡기면서 그 고통이 개별자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듯하다.

특히 금룡은 이 소설의 주인공 격인데, 아둔한 것 같지만 강하고, 무지한 것 같은데 영리하게 국가를 우스개로 만들어버린다. 그 강력한 무기는 바로 어떤 고통을 가해도 무너지지 않는 신체적 특성이다. 금룡만 그런 것은 아니다. 놀음에 빠져 사는 아버지 몽룡 또한 민중의 한 속성을 부여받는데, 특히 고산족의 집들을 철거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해학을 통해 저항하는 민중적 지혜를 떠올리게 한다.

그 일은 가림판 공사를 마치고 집에서 놀던 천변족에게 맡겨졌다. 일당이라도 타 먹을 요량으로 나섰지만, 고산족들의 집을 허무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아는 법이었다. 철거에 나선 천변족들은 감독관의 눈을 피해 판자의 못들을 얌전히 뽑아서 언제든 집을 다시 지을 수 있도록 철거했다. 그건 철거가 아니라 정교한 해체였다.

천변족과 고산족은 1970년대 도시 빈민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평지에 살고 싶지만 부자들이 사는 평지에 진입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천변족과 고산족은 각각의 이해에 따라 대립하고 갈등하지만, 위에서 든 인용대로 ‘북쪽 나라’의 사절단에게 얕보이지 않으려고 고산족 집을 철거하는 ‘애꾸왕’에게 저항한다. 소설을 읽다가 보면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겠지만 여기서 ‘애꾸왕’은 박정희를 희화화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역사소설인 것은 아니다.

아무튼 아버지 몽룡이 허망한 꿈에 휩싸여 죽고 가장이 된 금룡은 평지로 진출했지만 그 평지는 부자들의 동네가 아니라 ‘텍사스촌’이었다. 금룡의 역사는 이 ‘텍사스촌’에서 시작되며, 작가 이시백이 ‘텍사스촌’을 통해 보여주려는 의도 역시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애꾸왕으로 상징되는 국가만이 아니라 ‘텍사스촌’으로 상징되는 주둔군의 존재, 즉 외세의 그림자를 말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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