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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글쓴이
하인리히 뵐 저
출판사
열린책들
출판일
2021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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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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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

1917년 독일 쾰른에서 목공예 가문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93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점에서 견습 생활을 하며 다양한 책을 섭렵했고, 이듬해 쾰른 대학에 입학해 독문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치 군에 징집되어 6년간 프랑스, 소련, 헝가리 등 여러 전선에서 복무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후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 쾰른에 정착했다.

이후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여, 1949년 병사들의 절망적인 삶을 묘사한 『기차는 정확했다』를 시작으로, 참혹한 참전 경험과 전후 독일의 참상을 그린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1951년 '47그룹 문학상'을 받으면서 문인으로서의 위치를 다졌고, 1953년에 출간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비평가와 독자들 모두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작가로서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외에도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문제작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비롯해 『9시 반의 당구』, 『어느 광대의 견해』, 『신변 보호』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 1967년에는 독일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했고, 1971년에 독일인으로는 최초로 국제펜클럽 회장으로 선출된 바 있다. 이 작품들로 언어의 힘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유머가 소설을 살아남게 한다고 믿으며, 작품 속 유머를 통해 인간다움의 미학을 그려낸 뵐은 1967년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상을 수상했으며, 1971년 국제적 문학가 단체인 국제펜클럽의 회장으로 선출되어 세계 곳곳에서 탄압받는 작가와 지식인들의 자유를 위해 노력했다. 1972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를 넘어, 행동하는 지성이자 ‘국가의 양심’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1958년 동맥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책 소개

분야소설
쾰른의 선인이라 불리며 전후 독일 문단을 이끈 하인리히 뵐의 장편소설이다. 가난한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전후의 참상과 고통에 침묵해야만 했던 이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1948년의 화폐 개혁 후에 서독의 대도시인 쾰른에서 벌어진 일을 부부 각자의 관점에서 그린 이 소설은 1953년 말까지 1만 7천 부 이상이 팔리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야기는 1952년 9월 30일 토요일 오전에 시작되어 10월 2일 정오경에 끝나는데, 작품의 제목은 예수의 수난을 다룬 흑인 영가「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따온 것이다. </br></br>가장인 프레드 보그너는 좁은 단칸방에서 아내 캐테, 세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와 다른 데서 산다. 그는 전쟁과 가난으로 인한 상처를 안고 포격으로 파괴된 도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그의 아내 캐테 보그너도 절망적인 일상생활과 위선적인 가톨릭 신자인 프랑케 부인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수모를 견디며 초라한 방에서 억지로 살아간다. 또 다시 아이를 임신한 그녀는 싸구려 호텔에서 남편과 함께 밤을 보내며 자신이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는 것을 깨닫지만 그와 헤어지기로 마음 먹는다. 그런데 부부가 단칸방에 사는 까닭은 그들이 게으르거나 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프랑케 부인이 응접실을 포함해 네 개의 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그너가 그 응접실을 쓸 수 있었더라면 그는 집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br></br>지역의 성직자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프랑케 부인은 주택을 배정하는 문제에서 부부를 도와주기는 커녕 방해를 한다. 사회에서 낙오한 보그너는 진실이 결여된 불공평한 사회에서 권태와 좌절을 느끼며 그 사회에 동참하기를 거부함으로써 탈락자이자 국외자가 된다. 아이를 많이 갖지 말라는 사회적 권유를 묵살하고 네 번째 아이를 가진 캐테 역시 사회 부적응자라 할 수 있다. 뵐은 원래 프레드 보그너의 귀향을 묘사하는 14장을 구상했지만 실제로 쓰지는 않았다. 가난은 사회적 책임이란 사실이 작품에서 분명히 제시되었는데 아내에 대한 사랑을 재발견하고 집에 돌아온다고 해서 반드시 사회적 환경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br></br>뵐은 이 작품으로 독일 비평가 협회 문학상을 비롯해 여러 문학상을 휩쓸었고 47년 그룹에서도 작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가톨릭 성직자에 대한 비판적인 서술로 가톨릭 교계로부터는 격렬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작품에 대해 동시대의 독자들은 주로 내용에 대한 토론을 했지만 오늘 날의 독자들은 형식적인 면에서 부족한 면, 그 중 가난한 자와 부자를 보는 도덕적인 시각, 모티프의 투명성 문제, 부분적으로 판에 박힌 서술 등을 중점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렇지만 하인리히 뵐이 이 소설로 서독의 여론에 점차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지금까지도 전쟁과 가난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이 시공간에서, 뵐의 소설은 여전히 살아 숨쉬며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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