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고스트 스토리.” _인디펜던트이저벨은 살금살금 거실로 나가서 불을 켰다. 벽난로에 여전히 온기가 약간 남아 있었지만 밤에는 불을 더 피우지 않았다. 석탄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았다. 물자 부족, 제한, 규칙, 배급통장, 쿠폰, 권고 지침…… 이저벨이 기억하는 한 언제나 그런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정부가 대책을 세우면 석탄 배급이 계속될 수 있을 거라고 투덜댔다. 누가 전쟁에서 이겼는지 모르겠군. 우리가 독일 사람들보다 더 못 살아, 그들은 말했다. _본문 41쪽1950년대 영국의 어느 마을, 전쟁이 끝나고 몇 년이 흘렀지만 사람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마을 곳곳에는 여전히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저벨과 필립은 결혼한 지 두 달 된 신혼부부다. 지역 보건의로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남편 필립과 달리, 이저벨은 낯선 마을에서의 결혼생활이 쉽지 않다. 다정하지만 자신의 일이 우선인 남편과 이웃들의 날선 시선들이 이저벨을 더욱 외롭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장 큰 골칫거리는 집이다. 이저벨과 필립은 자리를 잡을 동안 머물 요량으로 이 셋집에 들어왔다. 거실 겸 부엌과 침실, 단 두 칸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조악하기 그지없고 심지어 욕실은 공용이다. 거기다 위층에 사는 주인 여자가 집안을 쉴새없이 걸어다니는 소리가 밤낮으로 이저벨을 괴롭힌다. 이 집은 전에도 그녀를 속였고 또다시 속이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숨을 참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누군가 혹은 무언가는 굶주려 있었다. 그 굶주림은 이저벨을 꽉 붙잡아 끌어당기고 싶어했다. _본문 162쪽어느 날, 이저벨은 집안 벽장에서 낡은 군복 외투를 발견한다. 끊임없이 집안으로 새어들어오는 외풍 때문에 밤마다 추위에 떨어야 했던 이저벨은 그 군복 외투를 이불삼아 잠을 청한다. 오랜만에 단잠에 빠진 이저벨은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창밖에는 공군 제복 차림의 남자가 서 있다. 그는 이미 이저벨을 아는 양 다정한 눈빛으로 이저벨을 부른다. 이저벨은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남자를 집안에 들인다. 그 순간 다른 누군가의 기억이 이저벨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 기억 속에서 이저벨과 그 남자는 연인이고, 남자는 폭격기 조종사다. 남자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이저벨은 그 기억을 통해 남자의 이름이 알렉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알렉은 이저벨의 남편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매일 찾아온다. 이저벨은 점점 현실과 상상, ‘누군가’의 기억과 자신의 기억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알렉과 깊은 사이로 발전하면서 이저벨은 기이한 사실을 깨닫는다. 알렉은 언제나 같은 시간, 그가 무사히 폭격을 마치고 돌아온 스물여섯번째 작전과 목숨을 잃고 말았던 스물일곱번째 작전 사이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