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허먼 멜빌이 직접 퇴고한 1856년판 오리지널 텍스트를 함께 읽는
노동절 기념 영한대역 특별판
생전의 불운과 혹평과 생활고를 뒤로하고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재평가되어 에드거 앨런 포, 너새니얼 호손과 함께 대표적인 암흑낭만주의 작가로 꼽히며 미국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허먼 멜빌. 출간 당시에는 생소한 형식과 신성모독적 서술을 이유로 혹평을 받고 초판 삼천 부도 채 팔리지 못할 만큼 대중에게 외면당했던 장편 『모비 딕』, 심장발작으로 사망하며 끝내 미완성 유작으로 남은 장편 『선원, 빌리 버드』와 함께 멜빌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단편 「필경사 바틀비」가 2021년 노동절을 앞두고 영한대역 특별판으로 출간되었다.
전 세계 중단편 가운데 단연 수작으로 꼽히는 「필경사 바틀비」. 멜빌은 당시 미국 금융경제의 중심에 있던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타협적인 화자(변호사)와 비타협적인 주인공(바틀비)을 대비시키고,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독특한 어구의 반복을 통해 이 짧은 글 안에 문학성과 사회성, 철학성을 폭넓게 담아냈다. 이 작품은 미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교양서로도 널리 읽히고 있다. 또한 들뢰즈나 아감벤, 지젝, 네그리 같은 현대 철학자들은 바틀비의 소극적 저항과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을 실마리로 삼아 후기근대사회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길어 올리고 있다.
“짦은 글임에도 다양한 함의와 해석이 내재되어 있는 「필경사 바틀비」는 20세기 중반에 들어 미국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하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프로테우스처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얻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이 각종 이데올로기를 표방할 잠재성을 품고 있지만, 어느 한 가지를 주장하며 그것이 전부인 양 취급하면 곤란하다. 고립과 소외, 산업화된 일터의 본질과 계급투쟁, 노동운동, 형제애, 정신질환, 허무주의, 메시아론 등 다양한 논의에 사용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선, 낯설지만 강렬하면서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 자체가 주는 감동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 _ 공진호,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