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정주부다. 모임이나 일로 외출하는 일이 없으면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침대 밖을 나오자마자, 아침 준비를 하고 아이들 등교와 남편의 출근이 끝나면 설거지와 빨래를 한다. 오후가 되면 아이들 간식을 챙겨먹이고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집안일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직장인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 두 가지는  ‘오늘 뭐 먹지?’와 ‘내일 뭐 입지?’라는데. 나는 '오늘 뭘 해먹이지?'로 고민은 하지만  '내일  뭐 입지?'때문에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외출이 없는 가정주부의 하루가 이렇다 보니 집에 있을 때 화장은 고사하고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어젯밤에 입고 잤던 잠옷은 실내복이 되고, 그 실내복은 다시 잠옷이 되었다. 아파트 내에 있는 가까운 슈퍼나 옆집을 갈 일이 생기면 실내복에 점퍼를 걸쳐 대략 외출복으로 변신시켰다.

어느 날 아들과 딸이 물었다.

- 엄마, 그거 잠잘 때 입는 바지 아니었어요? 왜 그걸 입고 나와요?
- 엄마도 누구 엄마처럼 예쁘게 입고 있어요.
- 당신 그 바지 아까 나갈 때 입던 건데. 그거 입고 자려고?

남에게 보여줄 일이 없어서, 집안일하다 보면 편한 게 최고니까, 귀찮아서... 내가 옷에 신경 쓰지 않는 이유는 백가지라도 대라면 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꾸미고 차려입는데 신경 쓰지 않았다. 꾸미지 않고 있어도 내 스스로가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의 한마디에 그동안 내가 나를 내동댕이 쳤었구나, 싶었다.

나는 가족이 즐거울 수 있도록 예쁘게 잘 보여야 하고, 단정하게 하고 있어야 집안일도 더 멋지게 해낼 테고, 게을러서 나를 가꾸지 못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고...

나는 그날 이후로 변했다. 신랑이 아침 운동가는 시간에 함께 일어나서  잠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거추장스러운 외출복을 피해 옷장에서 괜찮고 편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아침 준비를 했다. 좀 귀찮고 불편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시작하는 아침은 새롭고 신선했다. 집안일을 하고 잠시 누워있으려다가도 입은 옷과 화장과 머리 스타일이 눌릴까 봐 그러지 않았다. 대신할 일을 찾았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비비 케이크를 찍어 바르고 오늘는 뭘 입을까? 하는 작은 고민과 설렘. 삶의 사소한 행복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예뻐지는 나 자신에 만족했고, 그런 나를 보는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하니, 나 또한 자신감도 생겼고 기분 좋았다.

난 패션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이렇게 지내다 보니 관심이 생긴다. 나에게 이런 변화는 가벼운 즐거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패션 패션 하는가 보다. 패션의 가벼운 즐거움은 나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