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밍
  1.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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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죄와 벌 (상)
글쓴이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9.1 (169)
무밍

고전이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사람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정의한다면, '죄와 벌'은 그 정의에 꼭 부합하는 소설이다. 100여년 전, 지금과는 풍경이 사뭇 달라진 러시아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은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글자가 빼곡하게 들어찬 책이 500페이지씩 두 권, 쉽게 읽기엔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게다가 이름 하나만으로도 복잡한데 같은 인물을 두고 읽는 법이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통에 인물관계도만 파악하는 데도 꽤나 시간이 걸리는 것이 러시아 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현대에도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심리학자보다 더 자세히 인간 내면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강렬한 문장으로 던지는 대문호의 통찰이 들어있어서가 아닐까.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는 가난으로 고통받는 대학생이다. 그 시절의 대학생은 지금과는 달리 엘리트 중 엘리트였기에 집안의 기대를 받고 공부를 하지만, 당장 생활비조차 없어 그는 건강을 해칠 지경에 이른다. 이런 음울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것이 페테르부르크의 풍경이다. 지금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기념관으로 자리하고 있다는데, 더럽고 어두컴컴한 방과, 우중충한 날씨에 사람들만 북적이는 도시의 모습은 풍경과 사람의 모습이 하나로 보일만큼 똑같아 보인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와 흥겨움에 넘치는 삶은 지중해의 쏟아지는 햇빛이 만들어낸 것과 마찬가지로, '죄와 벌'의 등장인물들은 가뜩이나 우중충한 도시, 그 중에서도 비좁고 더러운 방들이 연결되어 서로의 삶이 얽히고 설킨 이 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라스꼴리니코프는 가난으로 고통받던 와중에, 주점에서 우연히 전당포 노파를 욕하는 이야기를 듣고 막연히 생각해 오던 증오가 실체로 점점 굳혀진다. 전당포 노파가 사회에 생산적인 가치를 주지 못하고 남들에게 붙어 그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이'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그는 치밀한 계획 끝에 노파를 살해하고 노파의 여동생인 리자베트마저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그 후 우연과 운이 겹쳐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이 죄를 뒤집어쓰고 붙들려가지만, 죄책감으로 인해 그는 급격히 쇠약해진다.


처음에는 자신의 행동이 사회의 악을 대신 제거하는 단죄에 가까웠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하지만, 마찬가지로 가난 때문에 몸을 파는 일을 하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놓지 않는 '소냐'를 만난 후 그는 고민 끝에 자수를 한다. 이후 시베리아 감옥에서도 스스로의 삶을 부정하다가 소냐의 헌신적인 마음에 그는 양심의 벌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이 전체 줄거리이다.


'죄와 벌'은 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줄거리는 물론, 등장인물이 무척 개성적인 것이 특징이었다.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병약한 인텔리 청년 라스꼴리니코프를 통해서는 '목적이 무엇이든 죄는 정당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근원적인 질문을 고민할 수 있다. 목적이 선하다면, 행위나 결과가 악하든 그것은 인정받을 수 있는가. 과연 그 목적이 선하다는 것은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인간이 인간을 벌한다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페테르부르크의 사법판사를 맡은 인물을 통해서는 결코 성급하게 증거 없이 범죄자를 단죄하지 않지만, 그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게 옥죄어오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의 인물됨이나 성격은 소설 속에서 파악할 수는 없지만, 라스꼴리니코프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그의 말과 언행 하나하나는 라스꼴리니코프에게는 '벌'의 다른 형태가 아니었을까. 이처럼 작가는 결말을 통해 그 목적이 무엇이든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해치는 죄는 옳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통을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얘기하는 듯 보인다. 


한편, 소설에는 '소냐'를 비롯하여 라스꼴리니코프의 헌신적인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두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대체적으로 남자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모자라고 정상이 아닌 사람들이 가득하다. 수입은 없는데도 알콜에 중독되어 거의 자살에 가깝게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두냐'를 가정교사로 고용한 고용주는 그녀를 성적 대상으로 삼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린 끝에 유부남임에도 부인을 살해하고 (어디까지나 의심이지만) 두냐를 쫓아 페테르부르크까지 달려온다. 한편 라스콜리니코프의 어머니와 두냐는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지만 돈이 많다는 이유로 고급 관리와 결혼을 하고자 하는데, 그 관리도 무척이나 속물적인데다 '돈으로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비인간적인 인물이다. 


각 등장인물은 매우 희화화되어 있지만, 그들의 발언이나 행동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여성을 소유물이나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남성들은 현재에도 매우 흔하게 만날 수 있으며, 그들에게 자신의 삶을 맡기고 돈을 최고의 가치로 숭배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역시 늘상 입에 오르내릴 정도다. 그런 와중에 비록 직업이 비천함에도 신을 믿고 삶의 희망을 놓지 않는 '소냐'의 존재가치는 두드러지는데, 결국 라스꼴리니코프도 소냐 덕분에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되는데, 죄를 저지르고 벌을 받던 그에게 소냐는 구원 그 자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라스꼴리니코프에게 소냐는 구원과 성녀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장대한 분량이지만, 극적인 캐릭터와 사건 변화, 그리고 삶과 죄에 대해 너무나 현실적이고도 촘촘하게 문장을 써내려간 대문호의 고전을 읽는 기쁨은 시간이 가도 변치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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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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