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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 작성일
- 2018.1.26
검사내전
- 글쓴이
- 김웅 저
부키
영화에《검사외전》이 있다면 책에는『검사내전』이 있다. 인천지검에서 공안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웅 검사의 기록이다. 별명이 ‘또라이’, 더 나아가 ‘집요한 또라이’였다고 하는데, 뭔가 독특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그 시작부터 남다른데, ‘사기 공화국 풍경’부터 보여 준다. 이런 사기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조언 같다.(사기는 각자가 알아서 피해야 한다며 매정하게 말하고 있다) 김웅 검사에 따르면 사기의 공식이 있다. 사기의 첫 번째 공식은 피해자의 욕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보이스 피싱처럼 불안감으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사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기는 피해자의 욕심을 이용한다. 사기꾼들의 속임수란 것은 실상 제비가 물어온 박씨에서 고대광실 기와집이 나온다는 것만큼 허무맹랑하다. 맨 정신으로 들으면 누구나 말도 안 되는 사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배운 논리와 이성을 조금만 사용하면 손쉽게 물리칠 수 있다.(p. 62)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 이것이 사기의 서글픈 두 번째 공식이다. 그러니 설마 자기같이 어려운 사람을 등쳐먹겠느냐고 안심하지 마시라.(p. 86) 어설프게 아는 것은 사기당하는 지름길이다. 사기의 세 번째 공식이다. 나름대로 알아보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주변의 지인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는 없느니만 못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대신 해주는 것은 없다. 대신해주겠다는 사람은 대개 브로커다. 뭐든 새로운 일을 하려면 그곳에서 직접 6개월 이상 일해보고 나서 결정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냥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은 모조리 거짓말이다. 좋은 것을 굳이 광고까지 해서 당신에게 알려주는 선의란 없으며, 만약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절대 당신의 순번까지 돌아오지는 않는다.(p. 97) 이 공식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범죄 피해자가 되는 것은 큰 위기이기 때문이다.
재산을 비롯한 물리적인 피해를 당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입는다. 더욱이 사람과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도 잃는다.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흔히 사람들은 위기가 기회라고 설교한다. 정말 그럴까?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듯 위기는 위기다. 그것이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위기가 진짜 기회라면 위기를 만들어주는 컨설팅 회사가 있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들을 잘 들어보면 사실 위기가 아니었던 경우가 더 많다. 단순한 순환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부침에 불과한 것을 크나큰 위기였던 것처럼 호들갑 떠는 이유는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포장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심각한 타격을 주지 않는 것은 위기가 아니다. 위기란 대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게다가 막 걸음을 떼는 영민 씨 같은 청년들에게 닥치는 위기는 재기 불능의 타격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위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위기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다. (p. 103)
영민 씨의 사연을 잠깐 이야기하자면 35억 원의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전세 계약을 한다. 어쩔 수 없었다. 그곳이 강인하며 신실한 청년이 머물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었기 때문이다.(p. 100) 사기의 서글픈 두 번째 공식은 알면서도 당하게 만든다. 김웅 검사는 사기 공화국 풍경을 통해 결국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사람들,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진다. 여기서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데, ‘산도박장 박 여사’가 인상적이다. 말발에 놀라게 하더니 마지막에는 울게 만든다.
가끔 누군가 법이 무엇이냐고 꾸짖듯이 물어보면 박여사와 그 딸아이가 생각난다. 그렇다고 내가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화두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그저 검사란 사람 공부하기 좋은 자리이구나라는 생각 정도를 하게 되었다. 검사실은, 학구적인 분위기도 없고, 과거에만 천착하지만, 법이 우리 사회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는 자리다. 뭐랄까,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사회 현실과 요청에 기초한 법철학을 시작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이상, 법의 지배와 실제적인 정의, 법적 안정성과 현실적인 법 감정 사이의 대립과 긴장을 직접 마주하고,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요구들과 그것들이 어떻게 법으로 반영되는지, 또 어떻게 왜곡되며 법 실무가들에 의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경험할 수 있다. 입법 절차에서 표출된 국민들의 요구와 감정, 정상배들의 불온하고 무책임한 책동들, 그 사이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중용을 지키려는 노력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점철되어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형식적인 법률들, 그것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p. 220~ 221)
김웅 검사는 자신이 본 것을 독자들에게도 보여 준다. 자신의 사생활까지 드러낸다.(그의 별명이 왜 ‘또라이’, 더 나아가 ‘집요한 또라이’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 ‘법의 본질’을 통해서는 법이 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형사처벌 편의주의를 경계하기도 한다. 되도록 법과 엮이지 않고 사는 게 좋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다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실망하기는 이르다. 국민들에게는 재판할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언젠가는 사법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때는 법이 제발 약한 사람들의 편이었으면 좋겠다. 김웅 검사의 표현대로 이 책이 검사라는 직업의 이면이나 실상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p. 383) 대신 검사와 엮인 사람들의 실상을 알려주고 있다. 수사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남의 말을 잘 듣는 능력을 가졌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p. 138) 그 남의 말이 빛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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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