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한번읽어보자구

왜맨날아니라고그래
- 작성일
- 2018.1.28
백치 (하)
- 글쓴이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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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고 이걸 어떻게 읽나 싶으신 분들은 그냥 줄거리만 보셔도 됩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양상은 즐겁지만 사족이 많아 중간중간 좀 지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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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은 다시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로고진이 잠잠해졌을 때(그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공작은 조용히 상체를 수그리고 그와 나란히 앉았다. 그의 가슴은 몹시 심하게 두근거려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공작은 그를 훑어보았다. 로고진은 마치 공작의 존재를 잊어버린 듯 그를 향해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공작은 그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시간은 흘러 날이 새기 시작했다. 로고진은 간간이 그러다가는 돌연히 두서 없는 내용의 말을 날카롭게 소리 내어 중얼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함을 치다가는 갑자기 웃어 버리기도 했다. 공작은 떨리는 손을 내밀어 로고진의 머리를 만져 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뺨도 쓰다듬어 주었다.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공작 자신은 다시 몸을 떨기 시작했다. 마치 다리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 무언가 완전히 새로운 감정이 끝없는 우수를 동반하며 그의 마음을 짓눌러 왔다. 그러는 가운데 날이 밝았다. 마침내 공작은 무기력과 절망의 나락에 빠져 버린 듯 쿠션 위에 누워, 자기의 얼굴을 창백하게 굳어 버린 로고진의 얼굴에 갖다 대었다. 공작의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로고진의 두 뺨 위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공작은 자신의 눈물을 의식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이상 눈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적어도 여러 시간이 더 경과한 후에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때 살인자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열병을 앓고 있었다. 공작은 꼼짝 않고 조용히 옆에 앉아서, 환자의 비명소리와 헛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떨리는 손을 황급히 뻗어 그의 머리와 뺨을 어루만져 달래 주듯이 쓰다듬었다. 하지만 공작은 사람들이 물어보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방으로 들어와 그를 에워싼 사람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만약 슈나이더 교수가 스위스로부터 나타나 예전의 제자이자 환자인 공작을 지금 본다면, 치료차 스위스에 처음 도착했던 공작의 상태를 기억해 내곤, 손을 내저으면서 마치 그 당시처럼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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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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