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8.3.5
연애의 행방
- 글쓴이
- 히가시노 게이고 저
소미미디어
히가시노 게이고가 겨울 스포츠,
그것도 스노보드 매니아라는 것을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여기서는 아예 작가 사진도 스노보드를
타고 있는 것을 쓰고 있다. 이미 설산(雪山) 시리즈를 내고 있기도 하지만, 이전 작품들이 스키장이 사건의 배경이거나
사건이 해결되는 배경이 되는 것이었다면 여기서는 거의 스키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살인이나 도난 같은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추리소설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추리소설이 아니면 뭐냐고 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아예 추리소설의 틀과 내용도 벗어버렸다. 그냥 네 쌍의 남녀 관계에서 (그것도 스키장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사건들이 내용이다. 말하자면 그냥 연애 소설이다.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 답게 반전이 이어진다. 마치 추리 소설의 반전처럼 말이다. 사실 맨 첫 이야기를 읽고, 두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다시 표지와 안쪽 표지를 들춰봐야 했다. 이게
‘소설’이 아니고, ‘소설집’이 아닌가 해서. 전혀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앞 이야기에서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가 나오니, 연애에 관한 단편소설집처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답게 이야기들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연결된다. 인물들이 복잡한 관계를 가지면서 연결되면서. 세상은 좁다고 할 때
그것처럼, 혹은 네트워크 이론에서 ‘여섯 단계의 좁은 세상(small world)’이라고 할 때의 그것처럼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신참자』에서 비슷한 수법을 쓴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그 관계가 드러났고, 여기서는 그저 남녀 관계라는 게 좀 다를 뿐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관계가 그렇게 복잡한 것은 아니다. 관계도를 그려봤더니 한 사람에서 여러 선이 나오지만, 그게 난감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일곱 개의 에피소드를
연결하면서 남녀 간의 관계가 단 둘만의 관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옛 연인이 내 친구의 연인이 되고, 배신한
남자가 나와 아는 이의 배우자가 되어 나타나는 식이다. 이 우연들을 우리는 드라마에서 흔히 본다. 그런 내용이 나올 때 우리는 주로 야유로 답하거나 그 관계의 절묘함에 박수를 보낸다. 말하자면 극과 극의 반응이 나오는데, 그 관계를 얼마나 절묘하게
이용하느냐, 우연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가지고 있느냐가 반응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 같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우연은 그래도 절묘하고, 적절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어 야유보다는 박수 쪽에 가깝다.
아마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을 가벼운 마음으로 썼을 것이다. 맨날 살인 사건의 배후를 쫓는 소설을 쓰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것도 자신이 매우 좋아하는 겨울 스포츠를 배경으로 썼을 것이다.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솔직히 이건 독자를 위한 소설보다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 자신을 위한 소설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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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