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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친밀한 폭력
글쓴이
정희진 저
교양인
평균
별점9.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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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씨앗

       

  나는 2016년 3월에 결혼했다. 남편은 아들만 둘인 집안의 차남이다. 결혼 후 형님은 첫 카톡 대화에서 시댁 어른들의 생신과 시할아버지의 제사일을 알려주었다. 결혼 전 남편은 제대로 챙기지 않던 날들이었다.

 

  결혼 후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많은 물음이 생겼다. 왜 명절 때는 항상 시댁에 먼저가야 하는걸까? 왜 어머님은 음식을 챙겨주시면서 저장법이나 요리법을 나에게만 말씀하실까? 시댁에서 밥을 먹을 때 남편은 앉아서 상을 받는데 왜 나는 주방을 왔다갔다하며 할 일이 없는지 살펴봐야하는 것일까? 그 답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책에서 찾았다.

 

  <아주 친밀한 폭력>(정희진, 교양인, 2016)은 ‘아내 폭력’에 대한 연구를 담은 논문이다. 저자는 가정 폭력이라는 일상적인 용어를 거부하고 ‘아내 폭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가정 폭력은 아동 학대, 노인 학대 등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폭력을 포괄하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고’(p.42), ‘‘아내 폭력’은 강간, 성적 학대, 의처증, 남편의 경제적 통제 혹은 무능력 (……) 따위의 언어적, 심리적, 육체적, 경제적, 성적, 정서적 폭력을 동반하기 때문’(p.45)이다.

 

 '아내 폭력'의 이유는 다양하다. 동시에 모순적이다. 남편은 아내가 무식해서, 경제력이 없어서, 사치해서 때린다. 또는 똑똑해서, 돈을 잘 벌어서, 절약해서 때린다. 다시 말해 '아내 폭력'은 표면적으로 특별하거나 타당한 이유 없이 발생한다. 때문에 "'아내 폭력'에 대한 질문은 (안 때릴 수도 있는데) '왜 때리는가'보다는, '아내를 때릴 수 있는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로 전환되어야 한다."(p.92)

 

  저자는 ‘아내 폭력’이 남성 중심 사회의 가부장적 가족제도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남성에게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명분을 주는 가부장적인 가족제도는 아내를 비롯한 가정 내의 모든 자원을 남편의 소유물로 만든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 남편은 가정 내의 권력, 성, 경제력 및 노동을 착취하며 자신의 소유물인 아내와 자녀들에 대해 신체적, 언어적, 정서적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취득한다.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이라고 여기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은 결혼 후 가정 내에서 성 역할을 강요받는다. 집안을 청결하게 가꾸고, 가족의 식사를 담당하며, 자녀의 양육과 교육을 책임진다. 가정 밖에서 여성의 개인성이 어떻게 표출되든 가정 안에서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여성은 가사와 육아의 책임자가 된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결혼 후 여성은 권리보다 의무를 더 많이 부여받는다.

 

  “가부장제 사회의 주체로서 여성과 남성은 모두 가족 내에서 자신의 성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을 유지하려 하며, 또 (남녀가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로부터 권력을 얻는다. 특히 여성은 성별 분업 원리에 따라 가족 내 지위가 곧 사회에서의 지위가 되기 때문에, 피해 여성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 앞에서도 아내/어머니로서 성 역할을 좀처럼 포기하지 않게 된다. ‘아내 폭력’은 아내가 폭력을 유발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성 역할에 충실하고 집착함으로서 지속된다.” (p.100)

 

  이 책은 저자의 석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쓴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2001)의 개정판이다. 17여년 전의 상황에 근거하여 쓰여진만큼 현재의 상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가부장적 제도가 잔존하는 현대의 한국사회에는 가정 내 폭력이 발생할 잠재적인 가능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가장인 남성의 혈연을 더 중시하는 친족 문화, 비슷한 경제력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집안일은 여성의 일이라 치부되는 노동착취, 엄마는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고 아빠는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는 삽화가 그려진 아동용 도서의 교육 메시지는 가정 내 남녀 성 권력의 비대칭성을 세뇌하고 강화시킨다.

 

  사회적으로 <82년생 김지영>을 위시한 페미니즘 문학이 오랫동안 화두가 되고, 여권신장을 위한 노력이 각계각층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가정 내의 성 불평등은 문화와 관습이라는 이유로 이어지고 있으며 때로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사려깊은 아내’와 같은 미풍양속의 탈을 쓰고 여성의 희생과 가정 내 낮은 지위를 강요한다.

 

  도서 <82년생 김지영>, 영화 <B급며느리>, 웹툰 <며느라기> 등의 콘텐츠를 흥미롭게 본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콘텐츠들이 결혼 후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부당한 현상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아주 친밀한 폭력>은 그런 부당함이 발생하는 사회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을 제시한다.

 

  현재 남편으로부터 물리적적인 폭력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여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기거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예전 이야기이다’라며 안심할 일이 아니다. 사회 곳곳에 심겨진 폭력의 씨앗을 찾아 제거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가정 내 성 권력의 비대칭으로부터 발생하는 폭력을 인식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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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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