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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대여]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 열린책들 세계문학 011
글쓴이
로저 젤라즈니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8.9 (13)
엘리엇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로저 젤라즈니의 단편집은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라 이름붙였지만 그 아래 영어로는 다른 제목이 붙어 있다. 함께 실린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The Doors of his Face, the Lamps of His Mouth>이다. 이 제목은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 작품은 금성이 배경이다. 어찌 하여 원제와 다른 소설 제목을 따왔을까? 장미라는 단어가 주는 낭만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기독교 문화에선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이 더 익숙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어로 옮기면 좀 낯설지 않은가. 함께 실린 소설 제목들도 살펴 본다. <12월의 열쇠>, <이 죽음이 산에서>, <폭풍의 이 순간>, <화이올리를 사랑한 남자>... 역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가 제일 낫다. 로저 젤라즈니를 모른다 해도 조금 더 호감을 살 만하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얼마 전 리뷰한 <SF 명예의 전당>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다. 미국 SF 협회 회원들이 뽑은 인기투표에서 6위를 차지했다. 1964년 12월 31일 이전에 발표된 작품들이 후보였다. 1위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나이트폴>, 3위가 대니얼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다발을> 그리고 6위가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다. 나도 한때 구약성서 매니아였는데... 시골에서 컸기 때문에 주변에 도서관도 없고 읽을 만한 책들은 죄다 읽은지라 성서도 열심히 봤다. 구약성서는 옛날 이야기같지 않은가.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의 주인공 갤린저도 구약성서를 시로서 감상했다고 한다. 나야 평범하디 평범한 일개 시민이고 갤린저는 천재 중에 천재라서 좀 다르긴 하지만. 갤린저가 얼마나 천재냐면, 여섯 살에 이미 5개 국어를 구사했으며... 아직 한창 나인데 벌써 대학에서 위대한 시인들과 함께 다뤄지고 있다.


「대학 다닐 때 현대시 강의를 택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운을 뗐다. 「여섯 명의 시인이 그 대상이었죠 ― 예이츠, 파운드, 엘리엇, 크레인, 스티븐스, 그리고 갤린저였습니다. 그러던 학기 마지막날, 우리 교수가 약간 연극적인 말투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여섯 명의 이름은 금세기에 기록되고, 어떠한 지옥 같은 비평의 관문도 이들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갤린저의 천재성을 인정하지만 인성은 인정하지 못하는 모튼의 말이다. 어쨌거나 이 자신만만한 시인 갤린저는 화성 탐험대에 뽑혀 화성인들과 교류를 시작한다.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화성 세계. 이제 그는 화성의 경전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얻는데 그곳에서 신에게 바치는 춤을 보게 되고 브락사라는 무희와 사랑에 빠진다. 250살은 족히 먹었을 이 어린 누나(?)와 행복하던 것도 잠시, 지구로 귀환해야하는 날이 돌아오고 브락사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미친듯이 화성 사막을 헤매던 갤린저가 이대로 죽나싶을 때 브락사가 나타나고... 갤린저는 그들의 신전으로 찾아가 담판을 지으려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실은 화성인들의 빅 픽처였다는 사실! 망연자실한 갤린저는 자살기도를 하게 된다. 1963년에 씌인 소설이라는게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현대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의 작품이다.


갤린저가 불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후련한 느낌도 들었다. 이렇게 잘나고 자신만만한 남성이 화성 여인들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진다는 설정이 독특했다. 독실한 아버지 아래 나고자란 갤린저가 늘 종교를 피했지만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종교의 그늘로 들어오고... 청개구리 삶 그 자체다. 전도서를 떠올린 것도 화성의 경전과 비슷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도서를 티끌만큼도 믿지 않으면서 전도서를 가지고 화성인들을 꾸짖는데 사용하다니. 이런 역설이 또 어디있단 말인가? 릴케에 빙의해서 사랑을 속삭이던 모습들에서 이미 연애 짬바가 나오고... 한순간에 미래의 가정을 잃어버린 갤린저가 눈물짓는 장면은 애잔하다. 그는 앞으로 화성의 역사와 새로운 경전에서 어떤 식으로 등장할까? 지구와 화성의 교류는 계속 이어질텐데, 그 후의 삶이 궁금해진다. 좋은 작품이다. 나머지 단편들도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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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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