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 백 원

아니요아닌데요아닙니다
- 작성일
- 2018.7.12
백치 (하)
- 글쓴이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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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다시 영원한 의문이 남는다. 나의 겸손은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인가? 내가 잡어먹히게 되었으니 고맙게 됐다는 인사말을 요구하지 않고 나를 그냥 잡아먹으면 안 되는 것일까? 내가 두 주를 기다리고 싶지 않다고 해서 누군가가 정말로 자존심이 상한 것일까?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 이렇게 상상하는 편이 훨씬 더 정확할 것이다. 즉, 어떤 우주적인 조화를 위해 매일같이 어떤 생물이 희생되지 않으면 나머지 다른 생명체들이 살아 남을 수 없듯이, 삶의 가감의 법칙을 위해, 아니면 그 어떤 대조나 그 밖의 것들을 위해 나의 하찮은 삶, 즉 인류를 구성하는 한 원자의 삶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그다지 위대한 것이 아니란 점을 지적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자! 다른 식으로, 즉 끊임없이 서로서로를 잡아먹지 않고 이 세계를 형성해 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나는 이것에 동의한다. 내가 그러한 세계의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가정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내가 알 수 있을 만한 것도 있다. 만약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나로 하여금 인식하게 했다면, 이 세상의 구조가 오류투성이인 데다가 그러한 오류가 없다면 버텨 나갈 수 없다는 것에 내가 왜 신경 써야 되겠는가? 그렇다고 누가 나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이 모든 것은 불가능하고 공정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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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쳤다 라는 말을 이렇게 어렵게 빙빙 돌려 말하는 매력
도선생의 미친사람들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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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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