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8.7.29
전쟁에서 살아남기
- 글쓴이
- 메리 로치 저
열린책들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 작년 8월은 상황이 그런 때였다. 정말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때였다. 그래서 외면했다. 전쟁이 나면 모든 게 끝인데, 살아남는다는 게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가. 전쟁은 애당초 일어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러니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침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생각했다. 사실 작가 이름도 보지 않았다. 봤어도 달라지진 않았을 거다. 이미 그녀의 『꿀꺽! 한 입의 과학』이란 책을 읽긴 했었지만 저자 이름은 잊고 있었고, 그녀의
다른 책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적어도 한반도에서) 전쟁 얘기는 드물어진 상황에서 이 책을 펴든 것은
전쟁 때문이 아니다. 작가가 메리 로치이기 때문이다(이 책이
메리 로치, 혹은 메리 로취의 책으로 번역된 것으로 마지막으로 읽는 책이다). 메리 로치가 전쟁에 대해서 쓰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는 되었다. 책 내용이, 결국에는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긴 해도, 그게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니 (애초에 내가 이 책을 외면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인) 우리말 제목이 잘못 지어진 것은 아니되, 제대로
지어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메리 로치의 다른 책들처럼 책의 원래 제목(『Grunt』)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메리 로치의 번역된 책들의 경우, 『스푸크』, 『봉크』 같은 책들처럼 아예 원래 제목을 우리말 제목으로 삼은 경우도 있고,
『꿀꺽! 한 입의 과학』, 『우주 다큐』처럼
고친 제목도 있고, 『스티프』에서 『인체 재활용』으로 제목을 바꾼 경우도 있다).
‘Grunt’는 ‘투덜거림’이란 뜻이다. 전쟁과 투덜거림이 깊은 상관 관계가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전쟁을 고작 투덜거림 정도와 비교하다니… 그런데, 메리 로치가 쓴 내용들을 보면, 그래도 이해는 갈만 하다. 메리 로치는 분명 전쟁에서의 ‘생사(生死)’ 에 대해 쓰고는 있지만, 또 그것은 가볍게만 보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심각한 표정으로 비감하지는 않다. 그게 투덜거림이다. 심한 악취에, 오랜 행군에, 몰려오는 졸음에 병사들이 투덜거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메리 로치는 그렇게 이 책을 쓰고 있다.
남들이 쓰는 전쟁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별로 관심을 받지 않으면서도 중요하기 이를 데 없는 얘깃거리를 찾아서 경험하고, 묻고, 찾아가면서 쓴 책이 이 책이다. 전쟁 얘기를 하면서 성기 절단, 조류 실험, 세균, 졸음, 의무병의 실습, 땀, 상어 기피제 개발, 설사, 파리, 악취 얘기를 듣기는 굉장히 드물다. 그러면서도 가만 생각해보면 이건 너무나 중요한 얘기들이다. 그러니 그것들에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각광은 받지 못할 지언정. 메리 로치는 그런 이야기들을 쫓고 있고, 그런 이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얘기를 미국 아니면 다른 데서는 쓸 수가 있을까? 지금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나라는 (적어도 국가적 차원에서는) 아마도 미국 밖에 없지 않을까? 전세계 어디가에선 미군이 관여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전쟁에 대한 얘기도, 그것도 이런 사소하고도 중요한 것에 대한 얘기를 미국에서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재미있게 읽다가도 씁쓸해지기도 했다.
어쨌든 전쟁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악취로 적을 물리치거나, 사랑의 묘약 같은 것으로 서로를 감화시켜 전쟁할 마음을 없애기 위한 시도에서 눈이 번쩍 떠지기도 했다(물론 거의 실패에 관한 얘기다). 메리 로치도 우연한 기회에, 많은 도움을 받아가며 이 책을 썼지만 결국에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부검실에는 바퀴가 달린 양쪽으로 펼쳐지는 계단식 알루미늄 사다리가 있다. 나는 천장을 수리하나 보다 생각했다. 「아니에요. 내려다보기 위해서죠.」 스톤이 말했다. 부검 사진사는 전신을 담으려면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 나는 전쟁도 그렇지 않을까 추측한다. 천 개의 불빛(A thousand points of light)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뒤로 물러나서 전체를 볼 때에만, 그런 뒤에야 비로소 그중 어느 한 불빛의 가치를, 그것을 꺼뜨리는 행위의 정당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전체를 조망하기란 힘겹다. 사다리를 얼마나 높이 올라가야 할지 상상하기가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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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