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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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8.8.7
공터에서
- 글쓴이
- 김훈 저
해냄
마동수(馬東守)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7쪽)
첫 문장의 의미가 남다른 김훈의 소설 <공터에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주인공의 삶이 마무리되는 객관적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분명 이야기는 회고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소설은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왔던 한 아버지와 아들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이 없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작가가 전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동수의 삶은 우리 현대사의 아픈 장면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마동수는 경술년 국치의 해에 태어나 서울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만주의 길림, 장춘, 상해를 떠돌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돌아온다.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그곳에서 피 묻은 군복을 빠는 빨래꾼이 된다. 이 때 흥남에서 피난온 이도순을 만나 부부가 된다. 장남 마장세와 차남 마차세가 태어나지만 아버지 마동수는 변변한 직업없이 가끔씩 집에만 들르는 무능한 가장이었다. 가족 생계는 오롯이 이도순의 몫이었다. 마차세는 아버지의 삶을 이렇게 정리한다.
"난 아버지를 묻을 때 슬펐지만 좋았어. 한 세상이 이제 겨우 갔구나 싶었지. 이런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흙을 쾅쾅 밟았어. 형은 그 힘들게 지나간 자취가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는 거지.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려다가 또 다른 수렁에 빠지고 있는 게 아닐까? (184쪽)
장남 마장세는 베트남에 파병되었다가 그곳에서 제대하고 바로 미크로네시아로 가서 정착한다. 거기서 호텔업과 고철업을 영위하고 있지만 좋아서 정착했다기보다는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는 아버지 자취가 남아있는 곳으로 가기가 싫었고, 둘째는 베트남에서 전사한 전우 김정필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데 그는 베트남에서 함께 작전시 부상을 당했으며 탈출하는 과정에서 부담이 되어 자신이 사살한 동료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사실을 숨기고 죽은 김정필과 함께 무공훈장을 받았던 것이다.
차남 마차세의 삶도 순탄하지 않다. 제대하고 사귀던 여자 박상희와 결혼하지만 주간지 인턴기자로 취직한지 3개월만에 해고된다. 미대를 졸업한 아내 박상희의 미술학원 강의수입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의 부모들의 삶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 어머니 이도순도 마동수가 죽고 난 후 8년을 더 살았지만 결국 요양원에서 숨을 거둔다. 장남 마장세도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채 좋지 않은 모습으로 귀국한다.
내세울 것 없은 우리 이웃의 삶이 급박한 역사적 사건의 전개를 따라 그려진 작품이다. 이들은 세상과 겉돌면서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며 쫒겨 다닌다. 삶이 주는 무게에 짓눌리고 하루하루 마치 공터에서 혼자 쓸쓸하게 서 있는 듯하다. 지난 시대의 역사와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작가의 심정이 작품의 제목에 나타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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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