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춘문예

신통한다이어리
- 작성일
- 2018.9.1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글쓴이
- 옌롄커 저
웅진지식하우스
1.
문학은 영원히 우리의 삶 속 햇빛이자 달빛이고 가뭄에 내리는 단비이자 장마 끝에 비치는 햇살입니다. 우리는 문학의 존재를 위해 노래합니다. 문학은 우리에게 영원한 삶이자 노래입니다. 문학의 유일한 적은 시간입니다. 시간은 문학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장수하게도 하고 단명하게도 합니다. 따라서 문학의 호흡을 멈추게 하려는 모든 행위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궤도를 바꾸고 물 항아리나 우물 안에 달빛을 가둬두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 P.9~10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중국의 작가가 쓴 소설이다. 중국에서는 버림받은 소설인 것 같다. 변화되고 있는 중국사회, 그 사회의 내면에 존재하는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다. 제목과 달리, 군대에서의 치열한 생활상을 전하는 소설은 아니다. 공무분대장 우다왕이 그의 상사인 사단장의 아내인 류렌과의 볼륜같지 않은 볼륜을 벌이는 내용이다. 도대체, 이 내용과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것과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한참 동안 생각해 보지만,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2.
"자네의 가장 큰 이상이 뭐지?"
"공산주의를 실현하고 공산주의 사업을 위해 죽을 때가지 분투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미지근한 표정으로 웃었다. 마치 석탄불 위에 옅게 올려진 얼음과도 같았다. 류렌이 정색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이 그의 누나이고 누나가 무엇을 묻든지 간에 사실대로 솔직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하자 우다왕이 알겠다고 말했다.
- p.45
어쩌면, 그녀는 중국의 보통의 인민들이 복종해야 하는 권력의 주체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철저히 복종해야 하며, 그 명령이 부당한 것이라도 따라야 한다. 우다왕은 그녀와의 관계를 맺는 것에 처음에는 두렵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화를 냈을 뿐, 성적인 관계를 우다왕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국에 우다왕은 그녀에게 복종하며 그녀의 말에 충성을 다한다.
마침내 지도원은 우다왕을 불러 그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아나?"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나?"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사업 가운데 매일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빛과 열정을 봉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지요. 자신의 효심을 모두 부모님께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좋아. 아주 훌륭하군.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야. 게다가 깊은 깨달음과 이상까지 담겨 있어. 이론과 실천을 하나로 결합한 점이 가장 훌륭하네. 단지 어휘 선택에서 남을 섬기는 것과 효도하는 것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
- pp.96~97
사실, 처음엔 우다왕과 류렌의 관계를 사단장에게 들키는 뻔한 스토리를 예상했다. 그 후에 과연 어떻게 될까? 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가는데 왠걸, 그런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뻔한 이야기라면, 그것은 류렌이 권력의 주체로서의 상징성이 될 수는 없겠지. 대신, 류렌의 마음에 알 수 없는 원망을 심어주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우다왕은 그러므로 중국 인민의 상징이 되지 않을까.
3.
우다왕은 신병처럼 목에 잔뜩 힘주어 피 터져라 소리쳤다.
"사단장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입니다."
그의 고함은 힘이 넘치면서도 절도 있었다. 사병들이 연병장에서 훈련할 때 일제히 외치는 구호나 구령의 복창 소리 같았다. 그가 중대장을 바라보자 중대장을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럭저럭 비슷한 것 같군. 어서 출근하게. 난 숙소로 돌아가봐야겠네."
- PP.104~105
문득, 류렌과 우다왕의 볼륜엔 사단장의 암묵적인 재가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권력을 좌지우지자하는 주석과, 권력을 쟁취해 그것을 유지하려는 간부들. 그리고, 그 권력에 기대어 살아가야만 하는 인민들.
"어서 벗어. 인민을 위해 복무할 마음이 없는 거야?"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군복 바지를 벗었다. 그러자 사병 특유의 단단한 근육이 드러났다. 온몸의 건장한 근육 하나하나가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어제저녁에 펼쳐졌던 것과 똑같은 광경이었다. 갑자기 공기가 희박해지면서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폭염을 쏟아내는 하늘의 짙은 구름이 한바탕 뜨거운 비를 뿌리듯, 원한과 열정의 폭풍이 그들의 모든 것을 휘감아버렸다. 두 사람은 초조함과 애정의 목마름, 원한의 욕념을 품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마른 땔나무 한 무더기가 불붙고 있었다. 두 사람의 호흡이 잠시 힘겨워졌다. 거대한 불길에 사방이 온통 짙은 연기로 뒤덮인 것 같았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불꽃이 명멸하면서 짙은 연기가 하늘을 덮을 기세로 피어올랐다. 그때 류렌이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정말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군. 잘했어. 아주 잘했어."
- PP.118~11
류렌에게 자신의 남은 육체를 모두 바치는 우다왕. 그녀의 명령이라면 옷도 벗어던지는 충성심. 그리고 결국은 맺어지는 관계들. 그리고, 이 명령의 뒤안길에는 우다왕의 아내가 우다왕에게 절대 복종하라는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중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점은 누구도 중국의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중국의 권력은 그 저항하지 않는 인민들에게 먹고 살 길은 열어주지만, 그들의 감정, 그들의 생활만족도까지 다독여 주지는 않는다.
4.
"탈혁명, 탈사회주의 시대에 그는 의식적으로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와 혁명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거대한 상처와 고통의 소재를 확인하고 점검한다. 그 상처와 고통의 근원이 시공의 단절에 있든 육체적 고통에 있든, 아니면 죽음의 영원한 회귀에 있든 간에 이 모든 것을 작품 속에서 일종의 원초적 욕망의 에너지로 환원시킨다." - 옭긴이 후기 중.
원초적 욕망의 에너지. 그러나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우다왕의 육체의 탄원. 그 원망 어린 욕망의 근원을 보면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할지도 모르는 중국인의 소망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소망은 우리를, 많은 사람을, 끝내 성취하지 못한 "창백한 원망(p.299)"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슬픈 현실, 아픈 현실을 극복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인지도 모르겠다. 그 열망을 향한 작은 소망이 더 나은 중국이 되는 발판이 되고, 나아가서 더 나은 한국, 더 나은 우리의 세상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 리뷰는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서평이벤트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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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