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에세이

금비
- 작성일
- 2018.9.30
만약은 없다
- 글쓴이
- 남궁인 저
문학동네
이미 페이스북에서 유명한 의사였다. 가끔씩 올리는 긴글을 읽으면서 이 분의 책을 꼭 사서 봐야지, 다짐하곤 했다가 까먹어버리기를 반복했다. 하필 또 엄마 얘기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 엄마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후에 암 관련 카페에서 이 책에 관한 언급을 누군가 마침 하였고 이에 무조건 반응이 일어난 듯 책을 구입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떠올리면 엄마와 병실에 있던 상황들이 함께 떠오른다. 가만보니 저 사진도 호스피스 병실에서 찍은 사진이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책이니만큼 생사의 길목에 선 환자들에게 대한 이야기가 40여꼭지 실려 있다. 그렇지 않은 환자들이 훨씬 많겠지만 이야기의 소재와 부합하는 사연들은 죽기 직전 또는 큰 사고가 난 환자나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응급 상황의 이야기일테니. 더구나 세상에서 몇 번째로 바쁜 직업군에 들어가는 종합병원 의사아니던가. 이런 분이 책을 쓸 시간이 어디 있을까. 더더욱 응급실에 대해 의사의 관점으로 쓴 이야기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감사히도 이 분은 글을 써주었고 그래서 날 것의 응급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글도 어찌나 잘 쓰시는지. 냉혹함과 아찔함을, 그리고 소설 기법같은 반전의 요소도 적절히 들어간 의학에세이였다.
아이 낳고 응급실 가본 것이 몇 번이었다. 내 몸이 안좋아 가본 적이 없다. 엄마가 급격이 병세가 악화되면서 응급실을 가보는 것을 시작으로 어느 새 병원은 내게 친숙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바쁜 모습이 어떤 스케쥴로 움직이는지 꿸 정도였다. 활자로 이루어진 장면을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이유다.
응급실은 달랐다. 누구나 알 만한 병이거나 장기 치료차 다니는 진료실과 다르다. 부서지거나 곤죽이된 상태의 환자를 볼 경험은 없다. 이 책 속에는 하루하루가 그런 환자들과의 사투였다. 어느 곳이든 어느 분야든 각자의 몫에 애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정보가 부족하고 잘 알지 못하고, 나와 가까운 사람이 없는 분야는 불신과 의심부터 한다. 교직계도 그렇지만 의료계도 심하다. 그런 대접 받으려 10년 넘게 의학 공부했나란 자괴감이 들만도 하겠다. 이 책은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는다. 상상만 해왔던 응급환자들, 그리고 응급의학과 의사의 삶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40꼭지만큼의 삶의 맥락이 응급실에서 펼쳐진다. 소설같은데 현실이었던 상황. 처참한 상황들이 결코 재밌다는 가벼운 말로 내두르기엔 그런 상황에 놓였던 환자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남궁인 이 분, 글 정말 잘 쓴다. 약간 우울함을 들게 하지만 흡입력만큼은 최고다. 그걸 믿고 이 분의 두 번째 책도 샀다. [지독한 하루]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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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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