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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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대여] 편의점 인간
글쓴이
무라타 사야카 저
살림출판사
평균
별점8.4 (243)
엘리엇

처음 나왔을 때 부터 관심을 두었던 책인데 이제서야 제대로 읽었다. 사실 일본문학에 대한 관심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아쿠타카와 류노스케가 어떤 위치인지는 알고 있고,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어떤 작품이 문학상을 받았다더라, 누구의 추천을 받았다더라 하는 홍보 문구를 보면 어찌 되었든 재미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 소재가 특이하다거나, 작가가 독특하다거나 하면 더 궁금하고... 그래서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쭉 읽으려고 했었다. 작가가 18년 동안 편의점에서 일한 경험을 잘 녹여냈다는 추천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18년 동안 한 직종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니...


예전에 일본 소설과 프랑스 영화가 살짝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서로 죽고 못사는 관계(?)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약간 난해한 스타일로 끝을 낸다고 해야 할까? 프랑스 영화와는 달리 일본 영화나 소설은 그렇다고 완전히 절벽 엔딩이라 말하긴 뭐하고, 그렇다고 오픈 엔딩인 것도 아니다. 무언가 이야기가 이어질 듯하면서 끝나는데 이게 약간 '그래 오늘은 그렇게 흘러가고 내일은 비슷할 것이지만 어찌 됐든 그런 거야' 이런 식으로... 희망을 담은 메시지도 아니고 현재를 아주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쩔 수 없이 시류에 몸을 맡긴다는 느낌? 약간 그쪽 문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 듯도 하다. 어쨌든 《편의점 인간》의 엔딩은 그런 가운데에서 조금은 더 주체적으로 느껴진다는게 특이했다.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는 어릴 때부터, 주변의 판단에 따르면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아이였다. 친구들이 다투는 것을 말린답시고 뒤에서 삽으로 머리를 내리친다던가 한다. 나는 가장 합리적인 일을 한 거였어요. 학교에서 마구 화를 내는 선생님을 진정시킨다고 선생님의 치마와 속옷을 한꺼번에 내려버린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어머니가 사과를 한다. 게이코 본인은 이렇게 말한다. 텔레비전에서 보니, 어떤 여자가 마구 화를 낼 때 치마와 속옷을 내려 버리니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더라고요. 가족은 게이코를 데리고 병원이나 상담에 참여해보지만 그리 나아지는 구석이 없다. 그나마 게이코가 손이 덜 가고, 스스로 앞가림을 하게 된 것은 스스로가 편의점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한 후 부터다.


게이코의 대학 시절, 우연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이게 적성에 맞았던 것이다. 프로토콜이 있고 거기에 따르기만 하면 되니까 게이코에겐 쉬웠다. 누군가를 흉내내는 것도 잘 했다. 그래서 직장 동료 중 괜찮은 사람의 캐릭터 몇몇을 교묘히 섞어 자신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이야기 하니, 사기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는데... 게이코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일종의 사회화 과정을 거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사고 포장도 잘 하니 그 사람이랑은 공통 관심사가 생기고... 또 편의점 특성상 직원이 자주 바뀌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저 사람이 설마 나를 따라하겠어? 싶었을 것이다. 게다가 작업이 익숙해지니 일도 척척해내지, 교본에서 나올 법한 말투와 자세이니.


하지만 이것도 피상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일터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으니, 가족이나 친구들은 게이코를 딱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게이코의 인생에 아주 끼어들지는 않는데 책임을 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시라하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불평불만에 현실도피, 무책임한 남자. 시라하는 여성 고객들을 스토킹하고 나태한 자세를 일관하다 편의점에서 해고된다. 게이코는 우연히 시라하를 만나 동거를 제안한다.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에서 바라는 어떤 이상적인 이미지를 위해 서로의 이득을 취하자는 것이었다. 시라하는 갈 곳이 없는 상황이었고 게이코는 그를 일종의 반려동물처럼 생각했었던 것 같다. 게다가 게이코의 사고방식도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라하는 기둥 서방이 되지만 이 관계도 좀 오묘해진다.


게이코가 혼자일 때는 딱하게 생각할 정도이지 큰 간섭이 없던 사람들이, 그의 인생에 남자가 하나 생긴 것으로 아주 달라진다. 거의 인생계획까지 세워주고 시라하를 물고 씹고 뜯기 바쁘다. 게이코는 어리둥절하지만 한편으론 식구가 늘었기 때문에 의욕적인 생활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편의점을 그만두게 된다. 시라하의 가족이 찾아와 한바탕 퍼붓고 간 뒤로, 시라하는 게이코의 인생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게이코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정규직이 되어 자신을 부양하게 한다는 장대한 계획이다. 게이코 역시 그가 일종의 프로토콜을 제시했기 때문에 따르긴 하지만 그 행동이, 자신이 '편의점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게이코의 말에 따르면, 편의점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단다.


이 책을 소개할 때, 번역가가 '편의점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했던 것 같다. 무라타 사야카는 진짜 러브레터를 이 책 마지막에 실어 놨다. 편의점을 의인화하여서 말이다. 한때 우리 나라에서는 일본에 프리터(아르바이트 만으로 생활하는 사람)가 많다는 이야기에, 최저 임금이 높아서 그래도 생활이 가능하다며 대단하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실제 일본의 프리터들은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느라 바쁘고, 프리터를 하게 된 이유도 사회초년생의 임금이 아르바이트로 받는 임금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며 애초에 취업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 내에서도 프리터라고 하면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무라타 사야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분위기가 요즘과는 다르긴 하겠지만...


소설 속에서 게이코가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걱정을 빙자한 참견들은 작가 역시 익히 들었던 이야기들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글을 써 온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회가 무어라 하건 자신의 인생을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 온 긴 시간들을 시간 낭비였다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점도 글에서 느껴졌다. 결국 후루쿠라 게이코라는 인물은, 사회성이 떨어지고 능력도 부족하다는 프리터족에 대한 이미지를 그대로 옮김과 동시에 사회상을 비꼬는 것이다. 게이코가 사회가 바라는 길을 가려다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더 잘 어울리고 또 잘 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게 한다는 점에서... 작가가 자신의 인생을 변호하고 또 한편으론 자랑스러이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엔딩이 살짝 프랑스 영화스럽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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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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