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8.12.19
아가씨와 밤
- 글쓴이
- 기욤 뮈소 저
밝은세상
기욤 뮈소의 소설은 정갈하다. 이건 그냥 느낌일 뿐이지만, 다른 이들도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 미스터리 성격을 띠는
소설도 그렇다.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의 원인과 결말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귀가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은 어느 미스터리 소설이나 다 갖춰야 하지만(물론 그렇지
않은 소설도 있다), 기욤 뮈소의 소설은 그게 더 깔끔하다. 다작(多作)에 가까운 생산력을 보이기 때문에 자기 복제의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깔끔한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놀랍다.
정갈함은 문체 때문인 듯도 하다. 묘사는 세밀한데, 쓸데 없는 묘사는 별로 없다. 등장 인물의 심리를 묘사한답시고 주변을
죄다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 자신이 자신을 드러내거나, 혹은
자랑하거나, 아니면 독자들의 신경을 흐트러뜨리는 데나 필요하지 소설 자체에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욤 뮈소는 그런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소설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아가씨와 밤』도 그렇다. 기존의 기욤 뮈소 소설과 다른 점은 별로
없다. 아, 형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형사는 맨 처음에 마지막 사건 현장(그것도 사건이 일어나고 꽤 시간이
흐른 뒤)을 방문하는 데만 등장한다(기욤 뮈소의 대부분의
소설에서 그렇듯 젊은 여형사다). 사건을 추적하는 것은 소설가다. 배경이
기욤 뮈소의 고향인 프랑스 코트다쥐르인 것과 주인공이 소설가인 것을 연결해보면, 어쩌면 주인공 토마는
기욤 뮈소 자신을 모델로 했는지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성격은 비슷할 지 모른다. 어쨌든 여기서는 토마와 막심, 피나라는 고등학교 동창생이 25년전에 벌인 사건이 들춰내질 위험을 맞이하여 그것을 막기 위해서 개교 기념행사에 참석하면서 시작된다. 사건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사건이 밝혀지는 것을
막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게 목적으로 바뀐다.
사실 그 진실은 거의 막장에 가깝다. 알고 봤더니 엄마에게 내연의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는 옆집 아저씨였고, 자신은 그 아저씨의
아들이고, 그래서 어릴 적부터 형제처럼 지내던 친구는 진짜 형제였고,
모든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던 여학생은 동성애자였고… 이처럼 자극적인 막장 스토리를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쓴다면 어쩌면 적지 않은 비난에 직면했을 것이다(시청률은 높을 지 모르겠다. 아, 그러고보니 책 뒷장에는 이 소설이 프랑스 TV에서 6부작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게 ‘막장’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사실 ‘진실’을 찾는다는 것은, 예상 외의 무엇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충격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적어도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그래서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를 설정할 수 밖에 없는데, 우리는
그것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게 아닐까 싶다. 거기에 그 과정을 아주 정갈하게 만들어내는 기욤 뮈소의
능력 때문에 우리는 소설의 막장적 요소를 눈감아주거나, 혹은 뜻밖이라며 놀라는지 모른다.
누구나 어린 시절, 젊은 시절 어느 정도의 것이든 잘못을 저지른다. 그 잘못이 묻혀져서 여기까지 왔을 수도 있고, 그 잘못에 대한 처분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잘못은 내 마음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각인이 되어 살아 있다 그 ‘지울 수 없는 흔적’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토마나 막심, 파니 같은 잘못은 아니더라도 내게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런 게 있을 수 있다(가능성 같이 얘기하지만 거의 확실한 사실이다). 기욤 뮈소처럼 시신을 시멘트 벽 안에 숨겨놓는, 그런 잘못은 아니지만. 그 잘못 때문에, 아니 그 잘못에 대한 내 인식 때문에 나는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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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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