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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조는병아리
  1. 인문학으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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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의 탄생
글쓴이
그레그 스타인메츠 저
부키
평균
별점9.2 (27)
봄볕조는병아리

 독일의 바이에른 주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 아우크스부르크. 이 도시는 15~6세기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덕분에 바이에른 티켓이 있다면 뮌헨에서 43분 정도의 거리라 노이슈반스타인 성이 있는 퓌센과 함께 여행 일정에 넣어볼만한 도시다. 거기서 유독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장소가 있으니, 그 곳이 바로 '푸거라이'이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500년전인, 1521년에 만들어진 이 공동 주택 단지는 가난한 자들이 아주 싼 임대료로 주거 걱정 없이 살게 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유럽 역사 최초의 사회 복지 시설이라 평가받는다. 놀랍게도 이 '푸거라이'의 전통은 오늘에도 이어져 현재도 0.88 유로의 한 달 임대료로 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2년 동안 아우크스부르크에 거주했어야 하고 카톨릭 신자여야 하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복지란 개념이 전무했던 당시에 그런 시설이 만들어졌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이 곳을 만든 사람이 당시 유럽 최고의 부호였던 야코프 푸거였다. 지금의 재력가로 치면 빌 게이츠 정도랄까. 푸거는 돈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았지만, 출신은 그리 보잘 것 없었다. 그의 신분은 평민이었다. 그러나 부모를 잘 만났다. 이재에 눈이 밝은 할아버지 덕분에 어마어마한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부자가 삼대를 못 간다지만, 푸거만은 예외였다. 그는 할아버지 못지 않은 사업 수완으로 재산을 까먹기는커녕 더 많이 불렸던 것이다. 그의 재력은 당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전쟁 준비 같은 것으로 돈이 아쉬울 때마다 손을 벌릴 정도였다. 그 때는 왕이 하늘 아래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때로 감히 귀족도 아니고 평민이 눈을 마주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시기다. 하지만 푸거는 그런 미천한 신분에 구애받지 않았다. 왕이 대출을 원할 때면 상응한 대가를 요구하는 거래를 했으며 빚을 제 때 갚지 않으면 채무 상환을 독촉하는 편지를 보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싶은 일들을 야코프 푸거는 과감하게 하는 것이다. 그가 콧대를 세운 것은 정치 권력만이 아니었다. 카노사의 굴욕이란 사건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어떤 때는 왕권 보다 더 강한 종교 권력조차도 그는 꿀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막시밀리안이 이탈리아의 왕이 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베네치아를 지나가야 했을 때, 교황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 베네치아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병사를 모으고 먹일 수 있는 군자금이 필요했는데, 그만한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 야코프 푸거밖엔 없었다. 교황은 막시밀리안이 베네치아에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은밀히 푸거에게 돈을 빌려주지 말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왕에게서 이권을 얻어야했던 푸거는 교황의 말을 순순히 따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무시해 버리면 당시 교황의 허락을 받아 면죄부 판매를 독점하고 있던 그의 사업이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절충을 했다. 막시밀리안이 베네치아에 입성하지 못할 정도의 돈만 대출해 준 것이다. 막시밀리안이 자신이 원했던 베네치아가 아니라 거기서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황제 대관식을 치뤄야했다. 이런 식으로 푸거는 그 때 가장 강했던 두 가지 권력인 정치 와 종교를 자신의 돈으로 압도한 사람이었다.




 현재 뉴욕에서 증권 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그레그 스타인페츠가 쓴 '자본가의 탄생'은 바로 이러한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그저 놀라울 뿐인 당시 그 누구보다 막강한 힘을 지녔던 자본가, 야코프 푸거에 대해 소상히 밝히는 책이다. 그가 어떻게 권력과 종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수완을 발휘했는가를 그 때의 역사적 상황과 유기적으로 엮어 알려준다. 그것이 너무도 쉽고 재밌어서, 난 처음에 역사학자가 쓴 책인줄로만 알았다. 이 정도의 정보량은 역사학자만이 쓸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책 날개에서 직업이 증권분석가란 걸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로썬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 이유가 있다. 야코프 푸거가 중요성에 비해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또한 막대한 돈을 가진 자본가가 어느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는지, 미천한 신분(그는 돈으로 결국 막시밀리안에게서 아우크스부르크 인근의 영지를 얻어 귀족만이 될 수 있는 영주의 자리에까지 오른다.)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하는 것도.


 그런 저자의 의도는 양쪽 다 성공하고 있어, 새삼 자본의 힘을 깊이 깨닫게 된다. 그러나 푸거는 결코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당시는 오직 독점만이 거대한 부를 약속했기 때문에 경쟁 상대를 어떻게 하면 제거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거기서도 푸거는 독보적인 활약을 했다. 방해가 되는 은행가들은 이이제이이 전법으로 쓸어버리기도 했으며 교묘한 수를 써서 막시밀리안이 자신이 아니면 돈을 대출 받을 수 없도록 만들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왜 '푸거라이' 같은 사회 복지 시설을 지었을까? 당연히 원해서 한 것은 아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압력이 그에게 그것을 짖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는 교회의 허락으로 면죄부를 독점 판매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종교 혁명을 일으켰던 마틴 루터의 도시이기도 하다. 마틴 루터는 면죄부를 파는 야코프 푸거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계몽주의 세례는 푸거만이 받은 게 아니었다. 푸거와 똑같은 신분인 농부, 노동자 역시 받았다. 그들 모두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의 신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루터의 선도에 의해 농민 반란이 일어났고 그가 독점해서 채굴하고 있었던 헝가리의 광산에서도 광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푸거와 같은 자본가의 출현에 의해 상업과 산업에 사람들의 눈이 점점 뜨여지자, 독점이 나쁘다는 인식도 광범위하게 퍼져갔다. 푸거는 사면초가였다. 자신을 향해 밀려드는 사방의 창끝에서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자 한다면 나눠주는 시늉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많은 부자들이 자신의 위신과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기부 활동을 하듯이.


 그렇게 태어난 '푸거라이'였으나 어쨌든 지금은 유럽 최초의 복지 시설이자 아직도 그 전통이 지켜지고 있는 곳으로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물론 그걸 만든 야코프 푸거의 존재는 저자가 말했듯, 거의 잊혀졌지만.

 '자본가의 탄생'은 그처럼 사라졌던 야코프 푸거를 아주 생생하게 복원하고 있다. 거기다 야코프 푸거는 유럽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에다 크고 작게 영향을 미쳤는데 작가는 그걸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아주 재밌게 서술하고 있어 꼭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바우돌리아'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자아내게 만든다. 여하튼, 자본은 역사를 이야기할 때 자주 배경에 서 있는 존재였다. 주역은 언제나 왕이나 교황 같은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자본이 결코 뒷방에 앉아 손놓고 있지만은 않았다는 걸 '자본가의 탄생'은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자본의 역사가 궁금했다면, '자본가의 탄생'은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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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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