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19.1.21
자본가의 탄생
- 글쓴이
- 그레그 스타인메츠 저
부키
『자본가의 탄생』(원제,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사람>(The Richest Man Who Ever Lived))은 야코프 푸거라는
15세기, 16세기에 걸쳐 금융과 광산, 그리고 권력과의 결탁을 통해 세계 최고의 부를 일군 인물의 삶에 대한 평전이다.
야코프 푸거라는 이름은 다른 책을 읽으며 슬쩍슬쩍 접했다(어떤 책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지만). 어떤 책에서는 금융의 귀재로, 어떤
책에서는 광산업자로서, 또 어떤 책에서는 루터와 대결하고, 독일
농민 전쟁에서 반동의 편에 섰던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 책들에서 푸거는 조연이었다.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서 필요한 사람이었지만, 그를
주연으로 등장시킨 책은 없었다. 드디어 그가 주연을 맡은 책이 등장한 것이다.
푸거라는 인물에 대해서 평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부(富)를 어떻게 일구었는지, 그의 삶은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말 제목 그대로, 자본주의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전에 등장한 자본가로서, 유럽이 어떻게 근대의 길목에 접어들게 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야코프 푸거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직물업 가문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대담한 사업 수완으로 대부업과
광산업, 무역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또한 그는 그
돈을 벌기 위해서 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이는 이전의 부자와 다른 점이었다. 이전의 부자들이 돈을 이용해 권력을 얻고자 했다면, 푸거의 시대에는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그가 돈을 빌려주어 유럽의 B급
왕실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 최고의 황가가 되도록 한 것도, 한자동맹을 와해시킨 것도, 독일농민전쟁(이 전쟁을 역사상 최초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격돌한
전쟁이라고 한 것은 엥겔스였고, 이 책에서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에서
중심에 서서 농민들을 격퇴시킨 것도, 모두 돈을 지키고, 부를
일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현대 자본가의 태동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본가로서 그 시대의 거대한 흐름 속에 있었고, 그 흐름 속
중심에 있었다(심지어 종교 개혁도 간접적으로 그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냉전 시기, 서독은 우표에 푸거의 얼굴을 넣었고, 동독은 독일농민전쟁의 지도자였던 토마스 뮌처의 초상화를 지폐에 새겼다. 그만큼
푸거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다. 저자는 주로 그의 공(功)을 더 많이 사고는 있지만(정확히는 자본주의의 승리에 대한 승인이라고
할 수 있다), 푸거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자본가의 어두운 측면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읽는 사람마다 그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아주 다양할 것이다. 그는
오로지 한 가지를 위해 맹렬히 살다간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 한 가지가 그의 역사에서, 그리고 그 후의 역사에서 너무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우리는 한
사람을 읽음으로써 역사를 읽는 것이다.
- 좋아요
- 6
- 댓글
- 1
- 작성일
- 2023.04.26